대법원이 내년 초부터 실시할 예정인 '법관인사 이원화'제도가 벌써부터 삐걱대고 있다. 제도 출범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아직도 세부방침이 확정되지 않아 법관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단계적으로 고법 인사를 지법과 분리하기 위해 2011년 상반기에 사법연수원 23~25기 출신 법관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아 고법판사를 임용키로 최근 결정했다. 2012년에는 24~26기가 지원대상으로 매년 3개 기수를 대상으로 고법판사 지원을 받아 최종적으로 고법을 지법과 분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고법판사의 전체 정원 및 연도별 선발인원 등 구체적 운용방안과 관련한 마스터 플랜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당장 내년부터 지법과 고법을 선택해야 할 연수원 23~25기 출신 법관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중앙지법 A판사(25기)는 "선발되는 기수별 고법판사 정원이 몇 명이고, 고법 간 이동은 몇 번 허용되는지 등 핵심내용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당장 이달 16일까지 희망 법원을 써내라고 하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같은 법원 B판사(25기)도 "첫 지법 부장 승진 대상자라 최근 부장판사 연수를 받았는데 법관 이원화에 대한 설명은 한 줄도 없었다"며 "심지어 해당 판사들만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관들 사이에서는 '눈치작전'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재경지법의 C판사는 "한 번의 선택으로 지법과 고법으로 갈리는 판국인데 고법판사를 지원했다 떨어질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선발방침 등에 대한 정보도 없으니 (동기들 간에도)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법관인사가 이원화되면 고법의 운영시스템이 크게 바뀌는데 이와 관련한 대비책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고법부장 아래 두 명의 배석판사로 구성되는 합의부가 앞으로는 3명의 동등한 고법판사로 교체되기 때문에 고법판사 업무는 그만큼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대법원은 개별 고법판사 아래 재판연구관(law clerk)을 두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선발방식이나 업무분장 등에 대한 구체안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자신의 재판과 함께 동료 법관 2명의 재판 합의까지 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를 재판경험이 전무한 로클럭 1, 2명과 함께 처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제도 개혁의 과도기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혼선이라는 입장이다. 법원행정처 고위관계자는 "미리 정원을 확정해서 공고를 내면 도리어 정원과 지원자 숫자가 달라 또 다른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더 큰 혼선을 방지하고 새로운 제도의 조기안착을 위해서 먼저 지원을 받아 본 뒤 정원 등 세부방침을 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 일각에서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임기(내년 9월) 내에 개혁성과를 내려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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