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유통업체들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 무차별적인 점포 확장으로 '동네 슈퍼'의 생존권을 위협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피자와 치킨 등 사실상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유 영역까지 침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규제가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영세 상인들의 반발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마트가 9일 5,000원이라는 초저가에 판매를 시작한'통큰 치킨'은 출시 직후부터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다. 전국 82개 매장에서 매장당 할당량인 하루 200~400마리가 판매 개시 후 몇 시간 만에 동이 날 정도다. 롯데마트는 한달에 60만 마리의 치킨이 판매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이마트가 지난 8월 한 판에 1만1,500원이라는 저가에 내놓은 이른바 '이마트 피자'도 현재 전국 52개 점포에서 매일 점포당 400판 안팎씩 팔려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중소상인들은 "대기업들이 또 다시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대기업들이 이른바 'SSM(기업형슈퍼마켓)법'이라 불리는 유통ㆍ상생법의 국회 통과로 무차별적 점포 확대가 어려워지자 영세상인들의 주력 업종에 직접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도 트위터를 통해 "닭 한 마리당 1,200원 정도 손해를 보고 판매하는 것인 만큼 영세 닭고기 판매점이 울상을 지을 만 하다"며 롯데마트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마트의 염가판매가 공정거래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업계내 경쟁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어 제재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 대한 중소상인들의 불만은 유통ㆍ상생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실제 지난달 25일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유통ㆍ상생법은 벌써부터 무력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소상공업계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한 대형할인점은 부산의 한 재래시장에서 불과 540㎙ 떨어진 곳에 점포를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전통시장에서 500㎙를 벗어난 지점에는 SSM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일단 SSM이 영업을 개시하면 제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맹점을 악용해 새벽에 몰래 개점하는 식의 '도둑입점'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상생법 규제 대상이 아닌 편의점에 식품코너 등을 확장 설치해 사실상 SSM처럼 운영하는 편법도 횡행하고 있다. 중소상공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SSM개점 금지 지역을 전통시장 반경 1㎞ 이상으로 확대하고, 전통시장 이외 구역에서도 SSM등록제를 시행하도록 하는 등 내용으로의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