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성기 때만 못하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사막의 기적’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그 두바이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겠다며 진출한 현지 개발사업을 총괄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온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빽빽한 고층건물로 채워진 도심과 모래사막으로 이분화된 중동 현장에 나와 있으려니, 유난히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새삼 고국의 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느끼곤 한다. 제대로 된 산이 없어 등반을 할 수는 없는 것이 만리타향에 나와있는 가장 큰 애로사항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우리회사가 57층으로 짓고 있는 건물을 지하부터 최상층까지 오르기로 한 것. 층층이 올라가며 만나는 근무자들에게 작업지시를 하며 현장을 챙기는 것이 업무이자 나름 현지에서 등반을 대체할 수 있는 기쁨이 된 셈이다.
주로 내가 서있게 되는 곳은 지상 266m의 건물 옥상이다.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빌딩마다 경쟁을 하고 있는 두바이 도심에서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칼리파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 눈 아래에 있으니, 마치 한라산 백록담 신선이 돼 세상 모두를 내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얼마 전 옥상에 올라 이제 곧 준공을 앞둔 이 빌딩의 지난 공사 과정을 돌이켜보니, 그 동안의 과정이 19세기 영국 등반가 앨버트 프레드릭 머메리(1855-1895)의 도전정신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오르면 된다는 등정주의(登頂主義) 대신 남아 가지 않은 어려운 길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과정을 중요시한 등로주의(登路主義)의 창시자 머메리.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머메리의 정신을 훗날 산악인들이 머메리즘(Mummerism)이라 부르는데, 최근 이 말이 나에게는 가장 큰 화두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의 온갖 난관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이제 그 끝이 보이는 지금 이 순간, “남이 가지 않았던 길을 우리가 개척했고, 또 무사히 정상에 올랐다”는 벅찬 자부심이 든다. 통상 중동의 건축 프로젝트는 단순 도급 사업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선배’ 건설회사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해, 회사가 직접 부지를 사들이고, 시공ㆍ분양까지 일괄 진행한 국내 건설사 최초의 중동 개발사업이다. 가이드가 없는 초등(初登) 길을 지나며 따랐을 위험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이제 우리가 개척한 이 길이 다른 누군가에는 커다란 가이드가 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는 새로운 등로(登路)를 찾게 하는 촉매제가 되리라 믿는다. 어렵지만 새로운 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인 머메리즘을 다시 한 번 가슴에 되새겨 보게 된다.
유대식 반도건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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