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 브리디 지음ㆍ김지선 옮김
삼인 발행ㆍ888쪽ㆍ3만5,000원
플라톤의 '향연'에서 파이드로스는 이상적인 군대로 동성애자 군대를 꼽았다. 실제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 연인들로 구성된 '테반 성단'은 엘리트 부대로 용맹함을 자랑했다. 동성애자 부대가 찬양됐던 것은 당시 사회가 '벗의 존경을 받기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전사의 이상적인 동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종교적 이상, 민족국가 수호 등이 최고의 가치로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이 당시 남성에게 요구된 덕목은 인내, 극기, 금욕 등이었는데 이런 덕목은 당시의 전쟁 형태와 관련이 있었다. 그때의 전투는 시민 병사들이 창을 들고 대열을 갖춘 방진 형태로 이뤄져,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진용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1대1의 각개격파식 돌진으로 무용을 자랑하는 영웅적 전사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호전적이거나 공격적이며 권력욕이 강하다는 등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은 이른바 남성성의 특징과도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 는 '남성성(masculinity)'이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변천해온 시대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호르몬이나 유전자 등 생물학적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를 규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역사ㆍ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에 서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흔한 얘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 리오 브로디 미국 남가주대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환경적 측면 중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성성은 주로 극단적 상황에서 규정되며, 전쟁이야말로 그러한 극단성이 가장 두드러지고 자연스러워지는 상황이다."(61쪽) 기사도에서>
물론 전쟁이 남성성을 결정한다는 식의 결정론적 시각은 아니다. 전쟁의 역사와 남성성이 어떻게 상호 영향을 미쳤는지를 폭넓은 지식과 방대한 사료로 짚고 있어 인류 문화의 복잡함과 미묘함을 읽을 수 있다. 전쟁무기 자체가 남성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 예로 중세 기사들의 갑주는 당시의 남성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복장이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자아 감각은 문자 그대로 갑옷으로 장식된 신체에 묶여 있었다. 맨몸에 비해 훨씬 웅장하고 위협적인 모습을 투영하는 중세시대 갑옷의 단단한 껍질은 그 자체가 기사도를 담아내는 형이상학적 인조 신체다"(109쪽)
책은 고대 영웅들의 전설에서부터 중세의 기사도를 거쳐 1960년대 베트남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기술, 무기 등과 함께 전쟁을 둘러싼 각종 이념들도 짚는다. 종교가 특히 '초월적인 전사 남성성'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만하다. 중세 기독교, 일본의 신도(神道), 이슬람교는 모두 전장에서 죽은 자들에게 '천국'을 약속했는데, 저자는 이런 배경에서 자살특공대와 최근의 폭탄 테러리스트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한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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