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잖아도 힘든데 우리 같은 영세상인들 다 죽으라는 얘기 아니냐."
10일 서울 남영동에서 프랜차이즈 치킨점을 운영하는 강모(45)씨는 롯데마트의 치킨 판매 얘기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기업형슈퍼마켓(SSM)으로 동네슈퍼들 싸그리 망하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동네 피자가게랑 치킨가게가 벌어들이는 쥐꼬리 같은 돈까지 빼앗아 가겠다는 심산"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롯데마트가 전날부터 5,000원에 판매하기 시작한 '통 큰 치킨'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한 관계자는 "판매 첫 날 수도권에선 대부분 개점 1시간여만에 동이 났고 다른 지역에서도 오후 4시 전에 목표물량이 다 팔렸다"고 전했다. 10일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경우 오전 9시에 문을 열자마자 주문이 쏟아지면서 1시간도 안돼 300마리 주문이 마감됐을 정도다. 300마리는 보통 중소 치킨점 5~6곳이 파는 양에 해당한다.
물론 강씨의 가게 매출이 당장 급감한 것은 아니다. 평소 하루에 50~60마리 정도 팔렸는데 9일에도 49마리를 팔았다고 한다. 강씨가 걱정하는 것은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롯데마트가 마진을 최소화했다고 선전하니까 결국 우리 같은 치킨가게들이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오해를 받게 됐다"면서"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점주들에게 다소 비싸게 공급하는 품목도 없지 않지만 1만5,000~1만7,000원짜리 치킨 1마리를 팔면 5,000~6,000원 정도 남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월세와 각종 세금, 인건비 등을 제하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별로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강씨는 "이마트가 처음에 피자를 팔기 시작했을 때 동네 피자가게들이 곧바로 문을 닫은 게 아니다"면서 "서서히 말라죽는 셈"이라고 했다. 강씨 가게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배달전문 피자점 주인 최모(37)씨의 얘기도 비슷했다. 그는 "그나마 싼 가격 하나로 유명 브랜드 피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입에 풀칠했는데 이마트 피자로 그것마저 어려워졌다"면서 "날마다 피자를 먹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테니 이마트에서 피자를 산 사람이라면 동네 피자를 먹을 일이 아예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10월부터 월 매출이 기존의 30% 수준까지 줄어든 최씨는 지금 전업을 고민중이라고 했다.
사실 이마트가 피자를 판매하기 시작한지 5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연일 전량 매진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에 390판을 판매하는 이마트 용산점의 경우 이날도 오후 1시30분께 주문이 마감됐다. 지난 8월 13개 점포를 시작으로 피자를 판매해온 이마트는 연말까지 피자 판매 점포를 60곳으로, 또 내년 상반기에는 8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마트 내에선 "피자가 올해 최고 히트상품"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최씨는 "동네 피자집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 뭉칠 수도 없다"고 했다. "서로 바쁘다 보니 그냥 근처에서 가게 운영하는 사람들 얼굴이나 아는 정도"라고 했다. 별다른 조직이 없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강씨의 경우는 집단행동에까지 나설 기세다. 조류독감(AI) 때문에 프랜차이즈업계가 구성한 치킨오리외식산업협의회가 구성돼 있어서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들만 회원사로 가입해 있지만 13일 대책본부를 구성하게 되면 가맹점주들은 물론 순수 개인사업자들까지 모두 참여시킬 방침이다. 전국적으로 치킨점은 5만여개에 달한다.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구기형 본스치킨 대표는"골목상권을 흔들어 놓고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작태가 대기업이 할 일이냐"면서"롯데그룹 계열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을 포함해서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적으로 영세자영업자들의 영역에 뛰어든 대기업들이 치킨이나 피자에 그치겠느냐"며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을 내몰면 그게 다 결국은 사회적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롯데마트의 치킨 판매는 또 다른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값이 1만5,000원을 훌쩍 넘는 게 바로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가맹점을 대상으로 횡포를 부리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공급하는 포장박스와 무 용기만 해도 각각 500원, 300원 안팎에 달할 정도다. "마진을 최소화했다"는 롯데마트의 설명을 두고는 도덕성 논란도 불거졌다. 실제로 한 생닭 공급업체는 "마리당 4,200원이 조금 안되는 수준"이라고 밝혀 롯데마트가 치킨을 미끼상품으로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힘을 보탰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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