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매일 두어 번씩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다 보니 더 그렇다. 빨갛고 따뜻한 사랑의 온도계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서울광장이 그러니 서울시 전역이, 온 나라가 더욱 추워져 버렸다. 사랑의 온도계와 짝을 이뤘던 구세군 자선냄비가 엊그제 등장했는데 홀로 울리는 종소리가 아무래도 썰렁하기만 하다.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여당이 마구 통과시키면서 '결식아동 급식비 0원'이라는 내용도 휩쓸려 확정됐다.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월동 보조비'도 많이 삭감됐다. 그 와중에 과매기를 좀 더 잘 먹을 수 있는 예산이 생겨났고, 의원들의 고향 주변 비포장도로가 아스팔트 길로 바뀌는 비용들이 적잖이 추가됐다.
이웃 돕기 실종돼 더 추운 겨울
시작을 했어도 한참 전에 불을 지폈어야 할 불우이웃 돕기 행사를 어찌할 것인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종전대로 이미 1일에 '희망 2011 나눔 캠페인'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열흘이 지났지만 모금 실적이 지난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스스로 국민들에게 손을 벌릴 염치가 없기 때문일 터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옷깃을 여미고, 자신과 주변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움츠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곳에 사랑의 온도계가 세워지면 한 번쯤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 마음을 간직하고 귀가하면 외투를 벗으면서 2,000원짜리 ARS(060-700-1212) 전화라도 한 번 걸곤 하지 않았던가.
유난히 출ㆍ퇴근 길에 추위가 심했던 최근이었는데 현재까지 ARS 기부금은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어제 서울의 한 유치원 아이들이 저금통을 들고 와서 고사리 손으로 동전을 모으는 모습이 공개됐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참깨가 많이 굴러봐야 호박 한 바퀴 도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그 동안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6대 4 정도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에 많이 기대어 온 것이 현실이다. 물론 기업들이 좋아서, 사회의 빚을 갚느라고 수억, 수십억, 수백억 원씩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고사리 손의 돼지저금통에서 수많은 자발적 기부자, 익명의 독지가들의 마음을 보면서 거기에 밀려 '강요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행해 왔던 게 사실이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사상 유례없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바람에 감히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인적 쇄신을 다짐하지만 국민이 보기에 너무나 미흡하고, 자체적 조직 정비를 하겠다지만 믿음을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누구도 그러한 공동모금회에 한 푼이라도 주머니를 털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가 없다. 경박한 추측이지만 철없는 유치원생들이나 저금통을 들고 나설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과 정서는 그곳에서 멈춰야 하고, 우리의 의식과 생각은 다음을 향해야 한다. 우리의 ARS, 우리의 기부는 모금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거쳐 전달되는 우리의 이웃을 위한 것이라는 너무나 뻔한 사실을 생각하자는 얘기다. 공동모금회가 밉고 괘씸하다고 해서 그 이웃들에게까지 얼굴을 돌릴 순 없다.
모금회 밉지만 기부는 계속돼야
혹시, 특히 기업의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으로 여기면서 평소 하던 불우이웃돕기를 어물쩍 넘겨버리려 든다면 참으로 비겁한 짓이다. '강요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마저 피해가선 안 된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양복 깃에서 여전히 사랑의 열매를 볼 수 없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그것을 달고 있으면 공동모금회의 부정ㆍ비리를 옹호하는 듯한 이미지가 생길까 봐서 그런다면 역시 옹졸하고 비겁하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번에 공동모금회에 기부하는 돈은 10원이든 10억 원이든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효율적으로, 전혀 배달사고 없이 불우이웃 돕기에 전달될 것이 확실하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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