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 창업주 양재봉 명예회장이 9일 오후 1시20분께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전남 나주 출생인 고인은 1975년 당시 직원 11명의 망해가던 중보증권을 인수, 오늘날 대신증권을 필두로 하는 종합금융그룹을 세운 우리 증권업계 1세대 경영인이다.
그는 목포상고를 졸업한 이듬해인 44년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사, 금융계에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일찍이 품었던 거상(巨商)의 꿈 때문에 안정적인 은행원 생활에 안주할 순 없었던 그는 한국전쟁 직후 미곡상, 양조업 등 사업에도 손을 댔지만 자금난으로 실패하고 결국 30대에 다시 금융계로 돌아왔다. 조흥은행과 한일은행을 거쳐, 73년 임대홍 미원그룹 회장, 박병규 해태제과 사장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하며 금융경영자로 나섰고, 2년 뒤에는 증권업에 진출했다.
고인의 별명은 오뚝이 '부도옹(不倒翁)'. 80년대 초 자본잠식, 90년대 말 외환위기 등 숱한 고비를 겪으면서도 그때마다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으로 보란 듯 재기와 도약에 성공했다. 1995년 무차입 경영 선언과 업계 최초의 전산화 투자 등은 고인의 탁월한 경영안목을 보여주는 사례. 덕분에 대신증권은 외환위기 당시 5대 증권사 중 유일하게 원래 주인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99년 이후 본격화한 온라인 증권거래 시대의 중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2001년 대신생명 부당지원의 책임을 지고 차남인 고 양회문 전 회장에게 경영을 물려줄 때까지, 고인은 대신경제연구소, 대신개발금융, 대신투자자문, 대신생명보험, 송촌문화재단,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설립, 종합금융그룹을 구축했다. 2004년 폐암으로 투병하던 차남 양 전 회장을 먼저 보내는 슬픔도 겪기도 했지만, 고인은 경영을 둘째 며느리 이어룡 현 대신증권 회장에게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난 뒤 송촌문화재단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힘을 쏟아왔다.
유족은 부인 최갑순씨, 아들 회천(전 광주방송 회장) 용호(대신에셋 회장) 정현(대신정보통신 부사장)씨와 사위 나영호(전 대신경제연구소 사장) 노정남(대신증권 사장) 이시영(중앙대 교수) 이재원(대신정보통신 사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결미사는 명동성당에서 11일 오전 8시. 장지는 용인 천주교공원묘지이다. (02)3010-2230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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