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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국방장관, 이제 말을 아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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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국방장관, 이제 말을 아끼라

입력
2010.12.0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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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일보사 주최 세계 여성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석한 세계 유수의 여성지도자들 중에서도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돋보였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 열린 행사에서 그가 제시한 북한문제 해법은 분명했다. '강한 힘에 바탕한 대화 추구'다. 원칙론으로 치부해버릴 얘기는 아니다. 지금은 북한을 제어할 만한 물리력, 외교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의 허약한 실력이 백일하에 드러난 상황이다.

김관진 국방부장관 취임 이후 사뭇 달라진 군 분위기는 첫 전군지휘관회의에서도 확연히 느껴졌다. 장군들의 눈빛이 살아나고, 경례자세도 한결 날이 서 보였다. 여기서 김 장관은 "6ㆍ25전쟁 이래 군의 최대 위기상황"임을 전제하고 전투형 야전부대 육성, 무사안일의 군문화 타파, 장군들부터의 변화 등을 거듭 강조했다. 오후 국회방문 때도 그는 "북한이 쥐고 있는 군사적 주도권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전임자들도 늘 했던 강한 언사들

청문회, 취임식, 해병부대와 함대사령부 육군사단 방문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그는 비슷한 질타와 약속, 지시를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적 위협의 근원을 제거할 때까지 강력 응징""도발하면 전투기 폭격, 함포 사격까지" "도발의 대가가 얼마나 처절한지 뼈저리게 느끼도록" …, 속 시원한 쾌변들이다. 급기야 "북한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는 말로 못을 박았다.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하지 않는 다음에야 더 이상 높은 수위가 없는 극한의 표현이다.

말의 성찬은 이만하면 됐다. 카타르시스 효과는 여기까지다. 천안함과 연평도가 당해도 매양 속수무책인 정부와 군을 보며 부글부글 끓던 심사들이 이 정도면 웬만큼 가라앉았을 것이다. 도리어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강경 일변도 발언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말들을 현실에서 제대로 주워담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다. 언사가 화려할수록 결과를 감당키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불안감의 원인은 또 있다. 합참작전본부장과 3군사령관, 합참의장 등 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이력에서 보듯 김 장관 역시 무사안일ㆍ행정조직형 군 문화 형성에 일조하고 그 안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할 수는 없는 입장인 것이다. 또 현역 시절 그는 소통을 중시하는 합리적 지휘관이란 평가는 받았지만 지금 보여주는 정도의 강골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론을 탄 무책임한 발언과 대책들이 도처에서 쏟아지는 판국이다. 전략전술의 기본도 모르는 첨단 장거리미사일의 서해5도 배치, 임무 별 효용에 무지한 해병특전사령부 주장 등이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오고, 마침내 서해5도 요새화 방안까지 나왔다. 방어력 강화 차원의 의미로 이해하지만 정작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닌 민감한 사안이다. 행여 김 장관의 언행도 일시적 시류에 영합하는 정치적 고려의 산물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배울 만한 라이스 장관의 리더십

이제 김 장관은 말을 아끼는 게 좋겠다. 이미 쏟아낸 말만으로도 충분히 메시지 과잉이다. 기억하건대 역대 국방장관들도 임명 때마다 표현의 차이는 있으되 거의 같은 단호한 다짐을 반복했다. 그 결과가 현재 전면개혁 요구 앞에 놓인 군의 모습이다. 특히 "북한이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등은 현실적으로 책임지기도 어렵고,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는 사려 깊지 못한 말이다. 다양한 안보환경의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장군이 아닌, 장관의 자리다.

라이스 전 장관은 앞서 소개한 행사 전에 주요 참석자들과 차를 마시며 9ㆍ11테러 때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당시 직원들이 나를 끌다시피 해 지하벙커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이럴 수는 없다'며 곧바로 뛰어나왔습니다. 미 국민에게 (국가안보를 책임지는)국무장관이 몸을 피하는 인상을 주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대통령에게도 연락해 빨리 벙커에서 나오도록 조언했습니다." 이게 지도자, 지휘관의 모습이다. 말은 이제 됐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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