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과 큰 딸이 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8일 이 회장의 작은 딸인 이서현(37) 제일모직ㆍ제일기획 전무도 두 회사의 부사장이 됐다. 3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과 향후 계열 분리까지 염두에 둔 정지작업이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삼성은 이날 부사장 30명, 전무 142명, 상무 318명 등 총 490명 규모의 사상 최대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삼성이 이처럼 대규모 승진 인사를 단행한 것은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기 때문. '업적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인사 원칙을 적용한 결과다. 삼성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220조원의 총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이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날 인사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이는 이 신임 부사장이다. 서울예고와 미국 파슨스 디자인 학교를 나와 2002년 제일모직 부장으로 입사한 이 신임 부사장은 그 동안 패션 부문 성장을 주도했고, 1월부터는 제일기획 전무까지 겸임해 왔다.
실제로 2002년 8,114억원이던 제일모직 패션 부문 매출이 올해 1조4,000억원으로 커진 데는 이 부사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2002년 1,541억원에 불과했던 캐주얼 브랜드 빈폴의 매출도 올해는 5,00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그는 또 구호, 르베이지, 띠어리, 토리버치, 꼼데가르송 등의 브랜드를 안착시키면서 글로벌 사업 다각화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4자녀를 둔 어머니로 온화하면서도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소통형 경영을 펴, 위ㆍ아래의 신망이 높다는 평이다.
이 신임 부사장의 남편인 김재열(42) 제일모직 전무도 이날 승진자 명단에 포함돼, 부부가 함께 부사장 승진의 기쁨을 누렸다. 김 신임 부사장은 2003년부터 제일모직 경영기획담당으로 일하면서 소재 및 전자재료 부문의 성장에 기여했다.
2007년 편광필름 업체인 에이스디지텍을 인수해 디스플레이소재 사업 영역을 확대했고, 2008년에는 폴리카보네이트(PC) 공장을 준공해 고부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사업의 토대를 강화한 것도 그가 주역이다.
이처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ㆍ에버랜드 사장에 이어 이 신임 부사장도 승진, 경영의 전면에 나섬에 따라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 회장에 이은 삼성의 3세 경영 체제가 그 윤곽을 드러냈다.
삼성은 특히 이번 인사에서 역량을 갖춘 참신한 인물을 연령과 직급 연차에 상관없이 과감히 발탁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승진자 490명중 직급 연한(부장 5년, 상무 6년, 전무 3년)을 1년 이상 앞지른 발탁 승진자가 79명이나 됐다. 발탁이 늘면서 삼성에 30대 임원 시대도 열렸다.
갤럭시S를 비롯 스마트폰 디자인 부문의 성과를 인정 받은 이민호(38) 삼성전자 수석을 비롯 3명의 30대 임원이 나왔다. 이는 21세기 창조의 시대를 선도해 나가기 위해선 이전처럼 서열과 연한을 강조해선 안 된다는 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여성 임원 7명이 대거 승진했다. 삼성전자에선 외국인 7명이 상무에 올랐다. 신규 임원 중 연구ㆍ개발(R&D) 인력이 10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점도 눈에 띈다.
한편 이 회장의 맏사위이자 이부진 호텔신라ㆍ에버랜드 사장의 남편인 임우재(42) 삼성전기 전무는 이번에 부사장 승진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둘째 사위인 김 신임 부사장이 2009년1월 전무가 된 데 비해, 임 전무는 지난해말 승진한 터여서 아직 1년이 되지 않았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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