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박쥐’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은 최근 신작을 촬영 중이다. 20분짜리 이 영화는 아이폰의 동영상 촬영 기능을 이용해 찍은 단편영화다. 박 감독이 다국적 프로젝트로 준비 중인 ‘액스’(가제)의 연출을 앞두고 몸풀기 식으로 만든 작품이다. 짧은 영화라지만 덩치는 무시할 수 없다. 박 감독이 제작비를 포함해 받은 돈은 1억5,000만원으로 알려졌다.
일상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이끌고 있는 아이폰이 충무로 지각변동의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유명 감독들의 아이폰 단편 만들기에 이어 장편 아이폰 영화 제작까지 추진되고 있다. 아이폰이 기존 디지털 캠코더 등을 대신할 새로운 영화촬영기로서 두각을 나타낼 조짐이다.
아이폰과 충무로의 첫 만남은 지난 10월 통신사 KT 주최로 열린 제1회 아이폰필름페스티벌을 통해 이뤄졌다. 정윤철(‘말아톤’), 임필성(‘남극일기’), 봉만대(‘맛있는 섹스’), 이호재(‘작전’), 윤종석(‘마린보이’), 홍경표(촬영감독), 홍원기(뮤직비디오 감독) 감독 등이 아이폰으로 촬영한 단편영화 12편을 선보였다. 이들 영화는 관객들로부터 화질이 예상 밖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폰 단편영화 제작에 자극 받은 충무로의 영화감독 A씨는 장편 에로영화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A씨는 “밤 촬영 때 조명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화질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롯데시네마는 KT와 손잡고 대상 상금 1,000만원인 스마트폰 단편영화 공모를 내달 3일 실시한다. KT는 서울 목동 KT정보전산센터 11층에 스마트폰 촬영 관련 장비를 대여해주고 스마트폰 촬영법을 가르쳐줄 스마트폰필름센터를 연내 개설할 예정이다.
아이폰이 영화촬영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주요 이유는 기술적 우월성보다 휴대의 편리성과 제작비 절감 가능성에 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아이폰은 이동이 간편한데다 고가의 촬영장비를 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계는 아이폰 촬영이 필름을 대체하고 있는 HD카메라 촬영보다 50% 가량의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로영화가 첫 아이폰 장편영화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이폰의 작은 크기 때문이다. 좁은 방에서 남녀의 은밀한 행위를 촬영하기엔 아이폰이 기존의 커다란 카메라보다 공간 활용도가 높다. A씨는 “무엇보다 아이폰은 접사(가까이 찍기) 기능이 매우 뛰어나다. 동영상 관련 어플도 많아 여러 쓰임새가 많은 것도 장점”이라고 밝혔다.
스마트TV, 모바일, IPTV 등 다양한 윈도가 늘고 있는 점도 아이폰 영화 부상의 이유다. 한 영화인은 “아이폰 영화 화질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 적은 돈으로 촬영해 극장 아닌 다른 윈도에 상영하는 새로운 배급방식이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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