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이 막을 내렸다. 금세 발효될 것처럼 보이던 한미 FTA는 미국 측의 쇠고기 수입 재개 요구 등 온갖 파행을 겪으며 최종 서명 3년을 훌쩍 넘긴 뒤에야 낯선 추가 협상 끝에 겨우 타결에 이르렀다.
이제 공은 양국 국회로 넘어갔다. 그런데 벌써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일방적으로 퍼준 협상, 독소조항으로 가득 찬 협상이니 절대 비준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부터 이익의 균형이 잘 조화되었으니 속히 통과시켜 실익을 조금이라도 빨리 누리자는 주장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먼 미래의 영향을 헤아리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지켜보는 국민은 어지럽기만 하다.
한미 FTA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추가협상 결과와 한미 FTA 자체에 대한 평가를 따로 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를 뒤섞으면 자칫 정치적 이해 등에 따라 둘 중 하나를 과대 또는 과소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협상만 놓고 보면 이익의 균형을 유지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승용차 수입관세 철폐가 4년 유예됨에 따라 한미 FTA로 가장 큰 효과가 기대됐던 완성차 부문의 이익 실현이 5년 뒤로 미뤄진다. 반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우리나라의 진입 장벽은 발효 직후부터 절반 이상 낮아진다. 물론 돼지고기와 의약품, 비자 등의 부문에서 약간의 추가 양보를 받아내긴 했지만 자동차에서 줄어든 몫을 대신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평가 대상을 한미 FTA 전체로 확대하면 사뭇 달라진다. 비록 추가협상 에서 내준 게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미 FTA 자체를 백지화하는 것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제외한 다른 부문의 관세는 예정대로 철폐하기로 했고,한미 FTA를 통해 서로의 장점을 배워 생산성을 높이는 지식과 기술의 누출효과(spill-over) 역시 동일하게 기대할 수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양국 간 협력의 필요성이나 무역구조 변화 추세 등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한미 FTA는 아직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더 많다. 지금 그대로 좌초시키기보다는 예정대로 진행하되,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여러 문제점을 속히 찾아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의도 중 하나는 '고용보호주의'의 부상이다. 완성차 관세는 철폐하지 않으면서 부품 관세를 철폐한다거나, 완성차 업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세이프가드 조항을 신설한 것은 미국에 차를 팔고 싶으면 완성차로 수출하기보다 미국에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각해진 미국의 고용 상황, 자동차 산업의 미국 내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크다.
따라서 이미 내줘버린 것에 연연하다 더 큰 기회를 놓치기보다는 완성차에서 잃은 수출과 고용의 기회를 한국 자동차의 현지 점유율을 크게 늘려 부품 분야에서 만회한다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다른 지역과의 FTA 대책도 시급하다. 아직 비준을 받지 못한 유럽연합(EU)부터 당장 새로운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높다. 추가협상이나 재협상 원칙과 전략의 틀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속담이 있다. 잃어버린 소가 아까운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 떠난 소 때문에 외양간에 남아 있는 다른 소들을 못 본 체하는 것은 어리석다. 외양간에 남은 소중한 소들을 지키려면 서둘러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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