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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밥을 명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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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밥을 명상하다

입력
2010.12.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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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꽃이다. 밥은 밥이 아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밥 먹었니?' 라고 물어 보는 것은 '넌 내 새끼야' 라는 증표이고, 어른에게 '진지 잡수셨습니까?'는 '당신을 존경합니다'며 악수를 내미는 것과 같다. 영화 에서 형사 송강호가 용의자에게'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물어 보았던 그 대사가 그토록 오래 회자되는 것도, 용의자건 연쇄 살인범이던 밥은 먹고 다녀야 한다는 밥 먹는 인간, 호모 밥피엔스를 뼈저리게 자각하기 때문이다.

밥과 연관된 기억은 그 어떤 것보다 오래 각인되는 경향이 있다.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서 곧잘 하시는 말씀이, 잘 사는 집 아이들은 늘 '흰 쌀밥에 장조림 반찬'을 싸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의 김정은도 인민들에게 흰 쌀밥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일 게다. 그 보다 더 힘센 기호, 인간의 평등한 부유함을 실감나게 표현할 상징은 없기에 흰 쌀밥에 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는 헛된 약속을 되풀이 하는지도 모른다.

무상급식을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가 갈등 상태에 있다는 뉴스다. 시장은 무상급식이 망국적 포퓰리즘이며, 부자집 자녀들에게 갈 급식비를 아껴 서민 복지에 더 힘쓰겠다고 주장한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순전히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어른들의 관점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에게 양질의 밥을 친구들과 같이 무료로 먹는다는 것은 '너도 인간, 나도 인간'이라는, 인간의 평등성을 피부로 느끼는 자리가 아닌가.

그것은 한강에 배 몇 척 더 다니게 하는 일보다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아파트 값이 치솟아 특정 시민들만 앉은 자리에서 부자가 되는 이 불합리한 세상에서 사실 사람은 먹어야 산다는 '동물적 고리'에 있어서는 똑 같이 약하다는 것을, 나라는 이러한 기본권을 보장해 준다는 소중한 체험을 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밥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보니 문득 김훈 선생의 칼럼이 생각난다. 제목이 '밥에 대한 단상'인데, 쉰이 넘어서 평기자로 입사한 김훈 선생은 그날 따라 광화문 시위대 앞에서 취재를 했던 것 같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전경들이 주저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그런데 시위 군중들도 짜장면이나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김훈 선생 본인도 짬뽕으로 점심을 먹고 있다. 모두 다 황사가 들어간 밥을 우적우적 먹는다.

그는 그 글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 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 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무상급식은 1년에 가계 부담을 90만원 덜어주는 복지정책이라는 점이나 부자도 이득을 보는 불합리한 정책이 아니냐는 논의를 제쳐두고, 밥이 인간에게, 밥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상해 보자. 밥상은 교육적으로 가장 소중한 장소이다. 밥상은 나라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가늠해 보는 시금석이다. 밥은 목숨줄이다. 그 밥 한 덩이를 두고 싸우지 말라. 그 밥 한 덩이를 두고 대선을 생각하지 말라. 그 밥을 그냥,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롭게 나누어 주라. 밥을 밥답게, 티 없게, 먹게 해 달라.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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