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올해 세제개편이 국회 심의를 거치면서 누더기가 됐다.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는가 싶었던 감세 철회 여부는 결국 내년에 논의하는 것으로 미뤄졌다. 대부분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압력에 휘둘린 결과였다.
결국 감세 철회 결론 유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7일 전체회의를 열고 소득세 감세 철회 방안을 두고 찬반 토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당초 ▦민주당이 제출한 소득세 감세 철회법안 ▦한나라당이 제출한 '1억원 초과'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수정법안을 놓고 표결에 부칠 예정이었지만, 표결 절차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여야는 관련법안을 상임위에 그대로 계류시키기로 했다. 기재위 소속 한 의원은 "법인세와 함께 소득세 감세 철회 여부도 내년에 재논의하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여야가 이처럼 감세 결론을 미룬 것은 소득세ㆍ법인세의 추가 감세 시점이 당장 내년이 아닌 2012년이기 때문. 1년 말미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정치적 부담을 안은 채 무리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기업들이 강력히 반대해 온 법인세 감세 철회는 일찌감치 내년에 논의하는 것으로 미뤄진 상태. 내년 하반기 부자 감세를 둘러싼 또 한번의 소모적인 공방이 불가피해졌다.
대폭 후퇴한 세제개편
정부는 지난해 세제개편에서도 임시투자세액공제(임투공제) 폐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1년 연장. 10% 공제율을 7%로 낮춘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올해도 똑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됐다. 임투공제는 1년 연장됐고, 공제율은 찔끔 낮아졌다. 지방과 중소기업은 5%, 수도권 대기업은 4%. 정부가 임투공제 폐지하는 조건으로 도입키로 했던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는 1%, '덤'으로 살아 남았다.
고가 미술품에 대한 양도차익 과세도 마찬가지. 벌써 20년째 끌어온 사안이었지만, 이번에도 고액자산가들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6,000만원 이상 고가 미술품, 그것도 작고한 작가의 작품에만 양도소득세를 물리기로 했지만 '2년 유예'로 결정이 났다.
올해 세제개편에서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인 세무검증제는 아예 무산됐다. 연간 수입이 5억원이 넘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학원 등 고소득 전문직종에 대해서 세무사에게 사전 검증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골자지만 "형평에 어긋난다"는 의사, 변호사의 로비에 무릎을 꿇었다.
결국 국회 재정위가 내린 결론은 내년 2월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겠다는 것. 하지만 내년이라고 해서 쉽사리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한편 이슬람채권(수쿠크)과 연계된 투자에 세금을 감면해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상정이 보류됐다.
근시안적 세제개편도 문제
매년 세제개편이 누더기로 전락하는 데는 정부 책임도 크다. 해마다 근시안적인 세제개편을 되풀이하다 보니,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전 대표)이 최근"세제가 너무 자주 바뀌면 개편에 따른 효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 큰 원칙을 갖고 중장기적인 개편안을 내놓아야 국회에서도 심도 있는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종규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한 무게감과 신뢰를 높이려면 매년 시류에 편승하는 개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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