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국회의 난항 속에서도 유독 여야가 원만한 합의를 빛내는 분야가 있다. 국회의원 세비를 5.1% 인상하기 위한 법안이 북한의 연평도 도발 직후 슬쩍 국회 운영위를 통과하더니, 행안위는 정치자금법 개정에 여야가 합의했다. 어제 행안위를 통과시키려던 예정은 잠시 늦춰졌지만 사실상 시간문제다.
개정안은 이른바 '오세훈 개혁입법'이 금지한 기업과 단체의 국회의원 후원을 풀고,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선관위 고발'을 거쳐야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기업과 단체의 연간 후원 한도액 등이 여야 논의과정에서 기업은 '국회의원 1인당 100만원, 총 2,000만원', 단체는 '국회의원 1인당 500만원, 총 1억5,0000만원'으로 처음보다 줄기는 했다.
여야가 모처럼 이룬 합의에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다른 예산안이나 법안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밥그릇 챙기기에는 열심인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수 국민의 이해가 걸린 예산안의 실질 심사는 제쳐두고 정치 공방에 매달린 것과는 너무 다르다. 여야가 예결위 심의에 앞선 9개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3조 1,551억원을 늘렸고, 국방위 증액분을 빼고는 그 대부분이 '애국ㆍ애향' 차원의 선심성 증액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자세는 예산안 대치과정에서 여야가 내세운 명분의 진실성까지 의심스럽게 한다.
더 큰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인 중대한 정책 변화를 아무런 사회적 논의 없이 슬쩍 해치우려는 처리방식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이 일부 현실과의 괴리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애초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에 이르렀다고는 보기 어렵다. 기업과 단체의 후원 허용은 현행법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국회가 논의의 물꼬를 틀 수는 있어도 결론부터 내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청목회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주목되는 시점에서의 법 개정은 사법절차에 상당한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입법권 남용으로 비치기 쉽다. 이런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여야는 개정안 논의를 중단하고, 사회적 논의 이후로 늦추는 정도를 찾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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