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산(金山ㆍ본명 張志樂ㆍ1905~38)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과감히 싸우다 죽었으면서 탄생 100년이 되는 2005년을 기다려서야 겨우 공로가 인정된 한국의 애국지사다.
김산의 자술(自述)전기로 미국의 종군작가 님 웨일즈(Nym Wales)가 영문으로 쓴 <아리랑> (Song of Arirang)은 책의 제목과 함께, 제1장 '회상'의 머리 대목에 민족 민요 아리랑의 정서로 조선 민족의 운명을 중첩시켰다. 아리랑>
1920~30년대 동아시아 대륙을 누벼 싸웠던 김산은 열 개도 넘는다는 가명(假名) 가운데 조선에 가장 많은 김씨 성에다, 산처럼 동요하지 않고 살겠다는 결심으로 '산'자를 이름으로, 아리랑과 함께 조국의 정서를 보듬었다. 금강산(金剛山)에서 한 글자를 뺀 '김산(金山)'과 '아리랑'으로.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노래다. 심금을 울려주는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주는 미(美)는 모두 슬픔을 담고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삼백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김산ㆍ님 웨일즈 지음, 조우화 옮김; <아리랑> , 동녘, 1984) 아리랑>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아리랑론'은 "아리랑고개는 열두 고개"라는 구절을 소개하며, 조선은 벌써 열두 고개 이상의 고개를 고통스럽게 넘어왔다고 덧붙였다. 그 스스로 비밀운동에서 처음 체포되어 천진(天津)으로 이송될 때 감방 벽에 "나는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고 썼다고 했다.
이런 민요 아리랑의 강한 추체험에서 을 출간한 님 웨일즈 또한 89세로 죽기 한 해 전(1997년) 서울에서 찾아간 한국 TV방송의 인터뷰에서는 이 조선 민요 아리랑을 분명하게 불러 보였다고 했다.(이원규; <김산평전> , 실천문학사, 참조) 김산평전>
'아리랑고개'는 물론 한갓 지리공간이 아닐 터이다. 민족 민요 아리랑의 불굴의 심상공간(心象空間)이다. 특히 1926년 나운규(羅雲奎)가 제작 주연한 영화 '아리랑'은 일제식민지 아래 허덕이는 조선 농민들의 비극적 운명과 반항의식을 그린 작품으로, 민족 정서를 결합하는 폭발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에서 아리랑은 주제곡으로 세 번 불렸는데, 영화의 대성공과 함께 '본조 아리랑'이 널리 퍼지면서, 아리랑고개는 민족적 심상지리로 김산의 아리랑으로 이어졌다.
민족 민요 아리랑은 유랑하는 조선 청년 투사를 지탱한 민족의 심상지리다. 김산은 일본 감옥에서 인간으로 견디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압력의 한계 모두에서 가장 잔인한 고문을 모두 이겨냈다고 했고, 이야말로 스스로를 이긴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조선은 마지막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고 절규했던 김산의 아리랑론을 재음미하며, 또한 남북이 아리랑을 합창하며 올림픽에 공동 입장하던 화해의 정신으로 하루 바삐 '동족의 길'을 회복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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