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검사' 의혹을 재수사 중인 강찬우 특임검사팀은 3일 사건 청탁과 함께 그랜저 승용차와 1,6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뢰)로 정모(51) 전 부장검사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초 정 전 부장에 대한 고발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던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가 부실했음을 인정한 셈이어서, 검찰이 '제식구 감싸기'를 했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특임검사팀에 따르면 정 전 부장은 지난해 1월30일 S건설 김모 대표한테서 3,400만원짜리 그랜저 승용차를 건네받고, 이 시점 전후로 수 차례에 걸쳐 현금과 수표로 1,600만원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전 부장은 원래 사용하던 중형차(시가 400만원 상당)를 김씨에게 넘긴 것으로 조사돼 뇌물액수는 총 4,600만여원으로 집계됐다.
강 특임검사는 "그랜저 외에 추가적인 금품 수수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그랜저도 대가성이 없다고 볼 수 없게 된 것"이라며 "정 전 부장과 김씨도 수사결과에 수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지난해 5월쯤 차값을 돌려준 것으로 볼 때, 단순한 차용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7월 정 전 부장을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나, 정 전 부장은 지난해 3월 말 김씨 회사 관계자로부터 자신이 고발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차값을 갚은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또 다른 금품, 차량대금 변제경위 등을 고려할 때, 그랜저의 성격은 '뇌물'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의혹이 불거진 뒤 "(다른 사건보다 더) 철저히 수사했다"고 주장했던 이전 수사팀으로선 할말이 없게 됐다.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10월7일 국정감사에서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기소해도 무죄가 나올 것으로 판단됐다"며 "그래서 기소하지 않았으며, 그 책임은 제가 지겠다"고 밝혔다. 당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정 전 부장의 1,500만원 수수 의혹을 제기했는데도, "그런 진술은 확보된 바 없으며, 현재로선 재수사할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수사의 새 단서로 수용하기보다는 '근거 없는 의혹'으로 치부한 셈인데, 결국 이번 재수사를 통해 해당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수사의지가 없었거나 수사력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한 상황이다. 강 특임검사는 "차용금이라고 주장하니, 그랜저 수수 전후로 다른 금품을 주고받은 것만 밝혀내면 그랜저의 대가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그 부분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수사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정 전 부장 등의 '차용금' 주장을 깰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 대검이 이 사건 재수사를 결정한 이유 역시 "수사가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신경식 1차장검사와 오정돈 당시 형사1부장은 재수사 논란을 빚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수사라인이기도 하다. 특히 오 부장은 지난 8월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 발령받았다는 점에서 자격 시비도 예상된다.
특임검사팀은 그랜저 등을 건넨 김씨도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씨의 애초 고소사건을 맡았던 도모 검사의 그랜저 수수 의혹에 대해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무혐의 처리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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