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3월 서울 마천동 동사무소. 79년 발령 받아 호적(현 가족관계등록)업무를 처음 맡은 조규호(당시 27세)씨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에게서 '부(父)'란을 비워 놓은 출생신고서를 받았다.
조씨는 빈 칸을 채워달라고 했고, 그 여자는 "아버지가 없다"고 했고, 조씨는 "아버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재촉했고, 여자는 얼굴을 붉히며 "없는 아버지를 당신이 만들어 줄 거예요?"라고 면박을 줬고…, 마침내 여자는 "모르면 공부 좀 하세요"라고 말한 뒤 신고서를 들고 나가 버렸다고 한다. "뒤에 선임자에게 물어봤더니 혼외 자녀는 아버지 성명을 기재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더군요. 제가 무지해서 상처를 줬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죠."
그랬던 조(57)씨는 현재 서울 송파구청 가족관계등록팀장이다. 그는 31년 공직 생활 중 20년간 개인 신분을 등록하는 공식 장부인 호적과 씨름해 '호적박사'라고 불린다. 그는 "당시 직원들은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는 말만 들었지 왜 그러는지도 몰랐고, 관련 법규도 몰랐어요. 그런 상태로 민원인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호적은 대법원이 관장하는 준사법적 업무로 출생ㆍ입양ㆍ복적ㆍ귀화 등 등록신고 종류만 44개, 적용 법규는 100개가 넘는 매우 까다로운 분야다. 게다가 국제결혼 증가 등으로 갈수록 업무가 복잡해져 공무원 사이에 기피대상 1호다.
조 팀장이 이런 호적을 전문적으로 파고든 것은 91년. 당시 다른 업무를 맡다 천호동 동사무소로 옮긴 그는 미국 출신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러 온 주민의 민원을 처리하다 이중국적 문제로 일이 꼬여 진땀께나 흘렸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경우였어요. '이렇게 무식한 공무원이 세금 받냐' 등 온갖 막말로 또 망신을 당했죠." 그간 호적법 개론서만 봐 온 그는 그날 당장 교보문고로 달려가 4,000쪽에 달하는 호적실무대전, 사례 해설집 등을 찾아봤다. 사설학원에서 민법 호적법 강의도 듣고, 호적 관련 기사와 각종 자료를 스크랩했다.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출퇴근할 때는 법조문을 외웠다.
94년 6월 지망했던 송파구청 호적계로 발령받은 조 팀장은 갈고 닦은 능력을 펼쳤다. 서류만 봐도 어떤 법 몇 조에 해당하는지 척척 설명하며 일사천리로 매일 평균 10건 이상을 처리했다. '호적박사'라는 별명이 붙으면서 타 구청 직원들의 전화문의도 쇄도했다. 그는 "오늘은 어떤 민원인이 올지 기대된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이 생겼다. 또 무적(無籍)인 어린이 장애인 등 구민 40여 명에게 호적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호적에만 빠져 살아 웃지 못할 일도 많이 겪었다. 집회가 빈번했던 90년대 초 성남의 헌 책방에서 낡은 호적 책을 샀는데, 서점 주인이 수배자쯤으로 오인해 신고하는 바람에 파출소로 끌려간 적도 있고, 초등학생이던 딸은 선생님과 친구에게 매일 공부하는 아버지의 직업을 '교사'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아내는 "당신은 호적이랑 결혼했어, 나랑 결혼했어? 둘 중 하나 선택해!"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95년 어느 날 도둑이 침입했는데 아무 것도 안 가져 간 거예요. 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한자투성이 호적 책만 잔뜩 있으니까 양주만 마시고 방바닥에 립스틱으로 '제발 돈 좀 벌고 살아라'라고 써놨지 뭐예요. 아내가 '어떻게 도둑한테 이런 소릴 듣냐'며 기가 막히다는 듯 웃더군요."(웃음)
구청은 대법원장 표창(2005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행정문화 분과 자문위원(2006~07), 법무부 가족관계등록법 제정 실무요원(2007) 등 대외적으로도 전문성을 인정받은 그에게 예외적으로 계속 호적 업무를 맡기고 있다. 지난 달에는 서울시 '행정의 달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2년 뒤면 정년퇴직이다. 그는 "승진도 어렵고, 빛나는 일은 아니지만 굉장히 보람 있었어요. 남은 기간 후배들에게 많이 가르쳐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글·사진=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