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온 조지킬(조승우+지킬)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흡인력 있는 스토리, 아름다운 선율에 조승우가 가세하자 시너지 효과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객석에서는 140여분 동안 그가 의도한 웃음과 감탄, 박수소리 외에는 작은 소곤거림조차 들리지 않았다. 시선은 오로지 그에게 꽂혔다.
지난달 30일 서울 잠실 샤롯데 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조승우가 제대한 뒤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작품이다. 회당 출연료는 1,800만원. 그가 출연하는 분량은 티켓 오픈 15분만에 매진됐다. 소문만 요란했던 건 아니었다. 지난 2일, 평일인데도 공연장 로비는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북적댔다. 퇴근을 서두른 직장인들은 공연장 밖 노상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었고, 객석은 늦는 관객이 거의 없이 빼곡히 들어찼다.
조승우가 맡은 의사 지킬은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물.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그는 제 안의 하이드라는 절대 악의 존재를 발견하고 파멸로 치닫는다. 작품은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보편적 소재에 매혹적인 로맨스를 곁들여 내용만으로도 흥미롭다.
여기에 조승우는 적절한 타이밍에 흘리는 짧은 숨소리만으로도 관객을 쥐락펴락했다. 개막일에 벅차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커튼콜에서 눈물을 터뜨렸다는 그는 완전히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작품의 절정인, 지킬과 하이드가 번갈아 노래하는 2막 ‘대결(Confrontation)’은 물론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빛나는 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장면에서가 아니었다. 사뭇 진지한 이 작품에서 그는 관객들을 웃겼다. 잇달아 펼쳐지는 섬뜩한 연기는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작품의 원작이 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1886년작 단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사건’이나 브로드웨이 버전은 지킬과 하이드가 묘하게 얽힌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둘을 기계적으로 분리한다. 설득력이 약하고 극적 묘미가 떨어지는 요인이다. 조승우는 그 간극을 연기로 메운다. 루시가 하이드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해주며 지킬이 “미안해요”라고 말할 때 그는 한 인물이 아니었다.
여주인공 루시(김선영), 엠마(조정은)와의 호흡도 좋았다. 이들과 어터슨(이희정), 댄버스 경(김봉환) 등 관록있는 배우들의 안정적이지만 과하지 않은 무대에 감동은 짙었다.
얼어붙은 뮤지컬 시장에 지킬이 조승우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2004년 여러 악조건에서도 브로드웨이보다 높은 수익률을 낸 그는 다시 한번 지킬을 살렸고, 뮤지컬의 침체도 일시 정지시켰다. 연말까지 ‘지킬 앤 하이드’는 예매율이 90%에 달한다.
입대 전 영화와 뮤지컬을 오가던 그는 자신을 뮤지컬 스타로 발돋움하게 한 이 작품을 컴백 작품으로 택했다. 아마 지킬이 부르는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참아온 나날, 힘겹던 날, 다 사라져간다… 남은 건 이제 승리뿐.”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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