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귀 기울이고 템포를 맞춰야지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집중하세요.”
3일 저녁 대전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 3층 대강당. 칠순의 할머니가 남자 주인공을 맡아 노래를 부르는 해동(17)이한테 언성을 높였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배우로 출연해 4~5일 이틀간 공연하는 영어뮤지컬‘지붕위의 바이올린’공연의 무대 리허설에서다. 머리를 긁적이며 멋적은 표정을 짓던 해동이가 이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활동을 통해 빈민가 청소년들을 밝은 세상으로 이끈 베네수엘라의 공공음악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대전 지역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영어 뮤지컬을 통해 희망을 심어주는‘대전판 엘 시스테마’도 있다.
재미동포 송쥴리(72) 선교사가 주역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에서 3년째 영어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대학 졸업 후 1964년 미국으로 유학을 간 그는 67년부터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33년간 일했다. 99년 은퇴 후 평소의 꿈이었던 신학 공부를 위해 신학원에 진학해 목회자 활동을 계획하던 중 2007년 미국 한인2세들을 인솔해 영어캠프에 참가하면서 대전과 인연을 맺었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던 남대전장로교회 강형문(47) 목사를 만나“목회자로 같이 활동 하자”는 권유를 받고 2008년 2월부터 아예 대전에 정착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선교사 활동을 병행하고있다. 영어 뮤지컬은 재미있는 영어를 위한 방편이었다.“지역아동센터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위기의 가정 아이들로 영어과외는 생각도 못해요. 이들에게 영어에 자신감을 주기 위해 영어 뮤지컬을 기획했던겁니다.”
미국 고교에서 매년 1편씩 뮤지컬을 제작한 경험이 있어 자신이 있었다.
첫 뮤지컬은 2008년 교회 공연용으로 만든‘크리스마스 캐롤’. 공연 시간이 짧고 연습기간도 한달 반에 불과해 어설펐지만 주변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 본격적으로 영어 뮤지컬을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고 건전하게 변화하는 모습에 고무됐다.
두번째 작품은‘스쿠루지’로 저작권자로부터 대본 라이센스를 받고 의상도 원작에 맞게 인터넷을 통해 미국에서 구입했다. 무대 설치비 등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은 사비로 충당했다. 비록 하루지만 440석 규모의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좌석이 꽉 찼다.
자신이 붙자 올해엔 전문가들도 쉽지 않은‘지붕위의 바이올린’을 선택한 것이다. 넉달전 공부방 학생들을 중심으로 출연자 오디션을 봤다. 중고생은 물론 대학생과 일반인도 참여했다. 그의 열정에 공감해 성악과 안무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도 생겼다. 학생들이 주중엔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때문에 총연습은 주말에만 했다.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더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연 비용도 자비로 마련했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내년 1월 11일 전문가들이 서는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무대에도 오른다. 문예전당이 지원하는‘2011 윈터페스티벌’작품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이달 말 미국으로 가려던 일정을 한달 늦췄다.
“마음에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뮤지컬을 하면서 서로 돕고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해요. 미국에 있는 가족을 좀 늦게 만나는게 대수겠어요.”
대전=글ㆍ사진 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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