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많은 한국민에게 ‘파렴치’의 대명사였다. 대형 인수ㆍ합병(M&A)이나 과세가 있을 때마다 론스타는 ‘나쁜 사례’의 단골 메뉴였고 이들을 불러들인 공무원들은 매국노로 매도되곤 했다. 이성과 감정을 오가며 춤추는 여론을 따라 당국, 검찰, 정치권은 돌아가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 그들이 외환은행 매각과 함께 이제 한국을 떠난다. 지난 12년간 그들이 한국사회에 남긴 명암을 돌아본다.
영욕의 12년
론스타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말. 자산관리공사로부터 5,400억원대 부실채권을 매입하면서부터다.
출발은 화려했다. 2003년까지 론스타는 5조원대(장부가 기준) 부실채권을 사들인 뒤 되팔아 쏠쏠한 이익을 챙긴다. 다음으로 눈을 돌린 상업용 부동산과 구조조정 기업 투자에서도 연이어 대박을 터뜨렸다. 2001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6,330억원에 인수한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를 3년 뒤 9,450억원에 되팔았고 각각 2002년과 2003년 인수한 스타리스(옛 한빛여신)와 극동건설에서도 2007년 매각을 통해 2~5배 가까운 차익을 남겼다.
론스타의 운수가 꼬이기 시작한 후반기는 2005년 말부터. 2003년 1조3,800억원에 인수한 외환은행을 놓고 여론이 나빠지면서 국세청이 검찰에 탈세 혐의를 고발했고, 연이어 감사원 감사, 국회의 검찰 고발이 이어졌다.
론스타는 한국을 떠나고 싶어했다. 2006년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매각협상을 사실상 끝냈지만, 사인 직전에 무산됐다. 2008년에는 HSBC와의 매각협상마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결렬되면서 또다시 2년을 기다려야 했고, 결국 인수 7년여만인 2010년에서야 하나금융에 넘기고 외환은행에서 손을 털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론스타에게 외환은행 매각은 사실상 한국 투자에서의 완전 철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투기자본 VS 사모펀드
론스타를 두고 여전히 국내에는 두 가지 시각이 공존한다. 한쪽은 투기자본으로 보는 비판세력. 이들의 시각은 일반 여론과도 맞닿아 있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경영이나 기업가치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매각차익만 노렸다는 점에서 론스타는 대표적인 해외 투기자본”이라고 규정했다. 비판론자들은 “은행이라는 공적시스템을 면밀한 검증 없이 해외 투기자본에 팔았다” “잦은 고배당과 신규투자 기피, 인력 구조조정으로 론스타가 은행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 시각은 좀 다르다. 일방적 옹호는 아니지만 분명 인정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 한 시중은행 임원은 “천문학적 이익만으로 론스타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살 때만 해도 매수자가 없어 정부까지 나섰던 부실은행이었는데 거꾸로 보면 론스타는 굉장히 위험한 투자를 감행한 대가를 챙긴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판을 하려면 투자과정에서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론스타는 투자자의 자금을 대신 굴리는 사모펀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3~4년이면 매각차익을 실현해야 할 사모펀드가 외환은행에 7년간 묶여 있었다면 대단히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실제로 론스타는 투자자들로부터 상당한 매각압력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면서 “2배 이상의 수익을 남겼지만 이 역시도 사모펀드 목표수익률이나 투자기간을 감안하면 폭리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론스타가 남긴 것
론스타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를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공무원의 보신주의.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한 변양호 전 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은 헐값매각 시비에 휘말려 수년간 곤욕을 치렀다. 행여 책임을 물을까 두려워 정책적 판단을 꺼리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은 여전히 공직사회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일각에선 향후 한국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우려도 제기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후 각종 소송에다 금융당국 때문에 두 번의 중요한 딜을 놓쳤다”며 “결국 ‘한국은 투자는 쉬워도 회수는 어려운 곳’이란 인식이 퍼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론스타는 우리가 앞으로 해외자본을 어떻게 관리ㆍ감독할 지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고 평했다. 그는 “금융당국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여전히 미루고 있고 테마섹과는 다른 산업자본 기준을 적용해 일관성도 보이지 못했다”며 “유치해 온 해외자본이 우리 산업에 순기능을 하도록 정부와 금융당국이 분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론스타 사건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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