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가 44%밖에 안나와요. 50%까지는 올라가야 작품을 꺼낼 수 있으니까 빨리 올려주세요. 바깥 공기가 들어오지 않게 에어커튼도 내려주시구요.”
큐레이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실에 울려퍼졌다. 20세기 최고의 색채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대규모 회고전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개막을 6일 앞둔 지난 27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전 세계에서 서울로 건너온 샤갈의 걸작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행복한 연인들이 날아오르고, 러시아의 작은 마을 풍경이 펼쳐지고, 신부를 태운 말이 하늘을 달리고…. 어느새 따스한 행복의 기운이 미술관을 포근하게 감쌌다.
보험평가액이 각각 500억원에 이르는 ‘도시 위에서’와 ‘산책’ 등이 미술품 전용 포장 박스에서 꺼내질 때마다 탄성이 흘러나왔다. 작품이 테이블 위로 옮겨지자 각국에서 온 큐레이터와 복원사들은 포장 직전에 작성한 컨디션 리포트와 작품 상태를 비교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산책’의 상태를 조심스레 살펴본 국립러시아미술관의 큐레이터 알리샤 류비모바씨는 “워낙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 혹시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상태가 매우 좋다. 전시 중에도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산책’은 전 세계에서 대여 요청이 끊이지 않는 작품”이라며 “이번 기회에 보다 많은 한국 관람객들이 이 작품을 만나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운송 등 준비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특정 미술관 몇 곳에서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전시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 세계 30여곳의 미술관과 개인소장가들로부터 작품을 엄선해왔기 때문이다. 164점의 작품은 지난 20일부터 1주일 동안 벨기에, 러시아, 영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총 12편의 비행기로 나뉘어 입국했다.
영국의 테이트미술관,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 러시아의 국립트레티아코프미술관 등 세계 최고의 미술관에서 작품 호송을 위해 한국에 온 큐레이터와 복원사들의 숫자만 20여명에 달한다. 공항에 도착한 작품들은 무진동 차량에 실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옮겨졌고, 개봉에 앞서 최소 24시간 이상 포장 상태로 전시실에 머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쳤다.
샤갈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대표작들이 이처럼 한 곳에 모이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각국의 미술 전문가들도 자신이 호송해온 작품의 확인을 마친 후에는 다른 곳에서 온 작품들을 감상하며 즐거워했다. 스위스 제네바 프티팔레미술관의 복원사 필립 쿤츠씨는 러시아 국립트레티아코프미술관 소장작인 ‘도시 위에서’ 앞에 아예 무릎을 꿇은 채 세세한 곳까지 뜯어보고 있었다. 그는 “책에서 수없이 봤던 그림이지만 실제로 보니 샤갈 작품만이 지닌 특유의 질감과 디테일이 느껴진다”며 “이런 멋진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감탄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30일까지 차례로 서울시립미술관에 설치된다. 폭이 8m에 이르는 대작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의 경우 둥글게 말린 채 한국에 왔다. 때문에 다른 작품과 달리 포장 박스 개봉 후 작품을 펼친 상태로 하루를 보관한 후 벽에 걸게 된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은 12월 2일 오후 5시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개막식에 이어, 12월 3일부터 내년 3월 27일까지 일반 관람객들과 만난다. 국내 블록버스터 전시 시대를 열었던 2004년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샤갈과 재회할 수 있는 기회다. 1577-8968
러시아 국립트레티아코프미술관의 큐레이터와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의 커미셔너 서순주(오른쪽)씨가 샤갈의 명작 ‘도시 위에서’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김주영기자 wi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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