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후배, 여유로운 선배들 간의 끈끈함이 최대의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화동연우회 창립 20주년 기념 무대 '페리클레스'의 연출을 맡은 김광림씨는 오후 7시부터 밤 11시까지 모교(경기고) 강당을 달궜던 2달 간의 연습을 먼저 내세웠다. 갖은 세파를 꿋꿋이 이겨낸 사람의 자부다. 같은 이치로, 명동예술극장의 '돈키호테' 역시 시간의 축적물로서 연극 무대의 맛을 선사한다.
'페리클레스'는 '겨울이야기' '태풍' 등과 함께 셰익스피어 후기 4대 낭만극으로 분류되는 걸작이지만 방대한 출연 인원 등의 문제 때문에 상연이 미뤄져 오다 이번에 초연된다. 세계 명작 중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선정, 공연해온 화동연우회의 덕이 크다. 모교 연극반 선후배 간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덕에 30여명의 출연진이라는 난제가 해결됐다.
1930년대의 대표적 극단인 조선연극사의 대표적 인물 김대철씨 등을 필두로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난 가서도 활동을 이어온 전통은 화동연우회 최대의 힘이다. 이번 무대를 가능케 한 것도 신구(52회)씨에서 이태상(100회)씨까지, 반세기를 뛰어넘는 선후배들의 유대다. 공연 있을 때마다 기수별로 구입하는 티켓, 광고와 홍보 등에서의 실제적 협찬은 이 극단에 힘이 된다. 특히 대중에게 낯설어 상업 극단이 꺼릴 수밖에 없는 무대에서 쾌히 노 개런티 출연을 자임하는 동문들은 이 극단의 국내 초연 무대들을 가능케 했다. '페리클레스'의 연출자 김광림씨는 65회 졸업생으로, 1991년 극단 창립 무대 '이런 동창들' 이래 극단 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예술적 성취는 또 다른 특색이다. 이번의 경우 판소리꾼 임진택(65회)씨의 참여 덕에 중세 음유시인의 텍스트는 완전히 한국의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여기에 대금, 전통 북, 기타, 아코디온 등 동서양 악기가 동참하니 영락없는 퓨전 무대다. 12월 4~12일,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02)3673-2248
이순재, 한명구, 박용수, 정규수, 김영민…. 명동예술극장의 '돈키호테'는 다양한 매체에서 성가 높은 중견급 배우들의 승부처다. 발레, 뮤지컬, 영화 등으로 잘 알려진 이 소설이 국내 처음으로 연극화되는 이 자리에는 17세기 스페인을 염두에 든 소품과 의상이 사실감을 높인다.
그러나 무대의 바닥과 벽은 현대 미니멀리즘 미학에 근거한 소품들로 빼곡히 채워진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화려한 무대로 호평받고 있는 양정웅씨의 연출, 무용극이라 해도 좋을 만큼 적극적 안무를 펼치는 박호빈씨, 격투 대목을 살아나게 한 무술지도가 한지빈씨 등의 역량이 합쳐졌다. 12월 10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44-2003.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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