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발의 포성에 연평도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섬을 떠나지 않은 주민은 3일 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대피소로 급히 몸을 숨겼고 일부 복구지원 인력은 빨리 섬을 떠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평도가 또 한번 전쟁의 공포에 시달렸다.
6일 오후 3시45분께 한전 인천본부 연평도발전소 인근에서 여러 차례 포성이 들렸다는 소식이 섬 전체로 삽시간에 퍼졌다. 겁에 질린 주민들이 피신하는 사이 군은 즉각 주요 도로를 차단하고 병력을 배치하면서 섬은 아수라장이 됐다.
대피소 안에서 이불을 쓴 채 떨고 있던 강선옥(82)씨는 “딸에게 (포탄이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대피소로 급하게 왔다”며 놀란 가슴을 억누르지 못했다. 잔류주민 중 최고령으로 알려진 이유성(83)씨는 “소리를 듣지 마자 바로 뛰었다. 또 (포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15분 뒤 군이 북한 내부에서 자체 훈련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었다. 포성을 가까이에서 들었다는 한 발전소 직원은 “겁이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육지로 나가든지 해야지. 발전소가 당연히 첫 번째 타깃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판이니 주민들은 연평도가 언제 평온과 정상을 되찾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날까지 섬 안에 남은 주민은 전체 1,290여명 중 2% 남짓인 총 20명(소연평도 포함 30명). 이들은 하나같이 “유령섬이 된 것 같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신유택(71)씨는 “6ㆍ25 전쟁 당시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며 “기르는 가축에게 줄 사료가 없어 굶겨 죽일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컸다. 기반 시설 복구와 치안 유지를 위해 온 외부 인력에다 국내외 취재진까지 한꺼번에 몰려 애당초 주민을 위해 준비했던 구호식량이 금새 동이 났기 때문. 한국적십자사 노진백 팀장은 “400여명이 몰리는 바람에 어제 하루에만 준비해 온 1,200인분의 식사가 동이 났다. 물품을 추가로 준비했는데 화물선이 오지 않는다면 더 이상 제공할 밥이 없다”고 했다.
일부 주민이 “정작 필요한 우리가 밥을 못 먹고, 다른 사람에게만 주느냐”고 거세게 항의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주민 이기옥(50)씨는 “집에 쌀이 떨어져 (섬) 밖으로 나간 이웃의 것을 빌렸다”고 말했다.
적십사자는 면사무소와 협의해 이날 중식부터 6,000인분의 군 전투식량을 준비해 나눠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안모(51)씨는 “내가 직접 안 하면 누가 해주겠나. 먹고 사는 건 내가 해야 한다”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연평도를 기약하듯 수백여 포기의 김장김치를 담갔다.
북한이 조성하는 긴장도 문제지만 포격에 무너진 민가복구 역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인천에 머무는 주민들의 복귀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철영 연평면 상황실장은 “전기 등 기반 시설은 복구됐지만 무너진 가옥에 대한 처리는 소유주 동의가 없어 당분간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연평도=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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