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구글링(googling)’이란 말은 ‘검색하기’라는 의미로 쓰인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사이트인 구글(google)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구글링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져 일반 명사처럼 쓰이는 것이다. 중국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바이두이샤(百度一下)’. 직역하면 ‘바이두(百度ㆍBaidu) 해봐’라는 의미인데, 바이두는 중국 최대 검색 사이트로 이 말 역시 ‘검색하기’라는 뜻으로 폭넓게 쓰인다. 바이두의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대목.
바이두의 창업자 리옌홍(42ㆍ해외에서는 ‘로빈 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은 18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에서 6위에 올랐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11위)보다 5위나 높은 순위. 바이두를 창업한 지 10년밖에 안됐지만 그는 벌써 중국의 아홉번째 갑부(35억달러ㆍ포브스)이기도 하다.
‘공룡’국가의 ‘공룡’검색 사이트
중국 산시성의 양취안에서 태어난 리는 오남매 중 넷째로, 외아들이었다. 부모님은 공장 노동자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해 프로그래밍 대회에 여러 번 나갔고, 대학입학시험에서는 양취안 지역 전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베이징대에서 정보관리학을 공부한 리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리는 94년 다우존스통신에 입사해 월스트리트저널의 웹사이트 가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96년에는 검색 엔진에 사용되는 알고리즘 ‘랭크덱스(RankDex)’를 개발해 미국 특허를 받는다. 훗날 바이두에 사용한 것도 이 기술.
99년 중국으로 돌아온 리는 2000년 친구 쉬융(에릭 쉬)과 함께 바이두를 창업했다. 사무실은 베이징의 허름한 호텔방 두 칸. 바이두(百度)란 이름은 중국 남송시대의 시인 신기질(辛棄疾)이 읊던 시구‘衆裏尋他千百度(무리 속에서 그를 천 번 백 번 찾아 헤매다)’에서 따왔다. “‘바이두’는 ‘수 백번’이라는 뜻으로, 정확한 정보를 찾기 위해 끈질기게 검색한다는 의미다”라고 리는 말한다.
바이두가 중국에서 구글을 밀어내고 검색 점유율 73%를 차지하게 된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 영화나 음악을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게 하는 검색기능이 큰 호응을 얻었다. 물론 불법 다운로드이지만. 어쨌든 바이두는 어휘에 기반한 검색으로 중국어 웹페이지에서의 검색 기술이 구글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다.
리가 갑부 반열에 오른 것은 2005년 바이두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면서다. 상장 첫날 바이두의 주가는 공모가(27달러)의 4배가 넘는 122.54달러로 마감했고, 2년 뒤 중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나스닥100지수에 편입됐다.
지난해 8월에는 처음으로 세계 검색점유율에서 야후(yahoo)를 제치고 2인자에 등극했다. 인터넷 사용인구가 4억명이 넘는 중국에서 검색 점유율이 73%, 한달 검색 요청이 85억건에 이른다고 하니, 바이두의 초고속 성장은 어쩌면 당연하다.
바이두의 ‘생존법’
“관련 법률과 정책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지난달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바이두 검색창에 ‘노벨상’이나 ‘류사오보’를 치면 이런 문구가 떴다.
바이두는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두는 정부의 비위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였던 반면 구글은 중국 정부와 충돌이 잦았다. 그 틈새를 파고든 것 또한 바이두의 성공비결. 2002년 중국 정부가 검색 사이트를 전면 차단했을 때, 바이두는 경고 받은 ‘유해정보’를 신속히 처리해 하루 만에 사이트를 다시 열었다. 당시 구글은 2주 동안 닫혀있었는데, 이 때가 바이두 성장의 발판이 됐다고 한다.
지난 1월 구글이 중국 정부의 검열에 반발해 중국지사를 철수하자 바이두의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넘게 늘었다. 엄청난 반사이익. 반면 구글은 홍콩을 통해 우회 접속으로 중국에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일부에서 바이두의 성공은 구글보다 뛰어난 시스템이 아닌 ‘환경적응력’ 덕분이라고 평하는 것도 그래서다. 실제로 리는 구글에 대해 “일개 기업이 강력한 행정부를 가진 중국 같은 나라와 싸워서는 안되며 상대 국가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업체와의 유착, 여론 조작 의혹도 자주 불거진다. 바이두는 검색어 순위를 경매에 붙여 돈을 많이 낸 업체 이름이 상위에 올라가도록 한다. 그런데 무허가 업체에게 상위 순위를 주고, 경매에 참가하지 않은 업체명은 아예 검색을 차단한 것이 드러나 ‘검색어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지난해 ‘멜라민 파동’때는 주범인 싼루그룹으로부터 300만위안(약 5억원)을 받고 멜라민 정보를 삭제해 준 증거가 유출되기도 했다.
바이두는 2008년에 일본에 진출했지만 점유율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 진출 계획도 몇 년전에 밝히긴 했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황. 우리도 바이두에서 검색어를 입력하는 날이 올까.
다음주에는 나이키(Nike)의 창업주 필 나이트를 소개합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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