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터전과 함께 희망까지 하루아침에 다 날아갔어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에요."
26일 오후 2시 인천 중구 신흥동의 실내워터파크 인스파월드 2층 찜질방. 연평도 주민 400여 명이 나흘 째 임시로 기거하는 이곳은 난민수용소를 연상케 했다. 일부 주민은 침통한 표정으로 대책을 논의했고, 고령자들은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여기저기 누워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급하게 섬을 빠져 나오면서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한 주민은 "살던 집이 산산조각 났고, 가진 거라고는 지금 입고 있는 옷밖에 없다"며 "북한의 도발은 대한민국 전체의 일인데 왜 연평도 주민들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연평도에서 칠십 평생을 살았다는 신성남(70)씨는 "섬에서 살다 실내에 갇혀 있으려니 너무 답답하다. 하룻밤이라도 편하게 쉬고 싶다"고 호소했다.
일부 주민들은 취재진의 접촉을 거부할 만큼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웠다. 한 40대 남성은 "우리는 관광하러 온 게 아니다. 육지 사람들은 우리 심정을 절대로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 떠난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민들의 병원행이 늘어나고 있다. 25일 인스파월드에서 주민 한 명이 이송된 데 이어 이날은 벌써 여섯 명이 길병원과 인하대병원으로 후송됐다. 인천중부소방서 관계자는 "대부분 탈진이나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60~70대 여성들인데 생후 4개월인 영아도 병원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인천에 친인척이나 지인 등이 없는 주민들은 섬에서 나온 뒤 4일째 인스파월드와 연안부두 일대 모텔 등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다. 옹진군은 25일 밤 인스파월드에서 210여 명, 모텔에서 100여 명이 숙박한 것으로 집계했다. 인스파월드 측은 주민들에 한해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모텔 등 다른 숙박기관 이용료와 식사비는 인천시와 옹진군이 사후정산하기로 했다. 배관식(52) 인스파월드 상무는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장기간 (숙박비를) 부담하기는 힘들다. 무료숙식은 일주일에서 최대 10일 정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시와 옹진군은 이날 행정안전부의 특별교부세 10억원을 주민 위로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초등학생은 50만원, 중학생 이상은 1인당 100만원씩이다.
인천=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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