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무차별 포격을 받은 연평도 주민 1,400여명의 96%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육지로 피난했다. 서해 5도의 최북단 백령도와 대청ㆍ소청도 주민들도 앞다퉈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지구촌 변방 분쟁지역의 비참한 처지로만 여기던 사태를 지금 우리는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나이 많은 세대는 6ㆍ25의 악몽을 떠올린다. G20 정상회의를 주최할 정도로 성장한 국력과 국격을 자랑한 국민 스스로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참담한 현실과 마주한 정부와 사회는 태연할 만치 차분하다. 오랜 무력 대치와 도발을 겪은 터라 위기에도 침착한 것을 대견하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외국 언론이 '6ㆍ25 이후 최대 위기'로 규정할 정도로 중대한 국가안보 비상사태이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평온을 되찾을 것으로 지레 믿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사태에 훨씬 앞서 군사 전문가들은"북한의 서해 5도 침탈"을 거듭 경고했다. 북한은 이미 2007년부터 서해 5도를 겨냥한 해안포를 대구경포로 바꾸고 사격훈련을 크게 늘렸다. 또'서해 5도의 지위와 출입함선의 안전 불인정' 등 위협을 계속했다. 올해 들어서는 천안함을 공격하고 북방한계선(NLL) 너머 우리 영해와 백령도 가까이 해안포 사격을 감행했다. 이어 휴전 이후 최초로 우리 영토를 무차별 포격한 사실에 비춰, 궁극적 목표가 무엇이든 서해 5도 침탈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군이 천안함 사태를 겪고서도 다시 무방비 상태로 당한 것은 낡은 방어 전략에 기댄 탓이다. 서해 5도의 우리 군은 적의 침투와 기습상륙을 저지하는데 주력, 해병여단을 비롯한 병력 위주로 배치됐다. 적 해안포와 방사포 전력에 비해 초라한 포병과 방호시설 등을 갖춘 채'비례성 원칙에 따른 대응' 따위를 떠든 것은 한심하다.
피난 행렬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최신무기 배치 등의 전력강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런 임시변통으로는 안보에 극히 소중한 서해 5도를 지킬 수 없다. 군과 민간을 가림 없이 처참하게 파괴된 연평도의 모습은 군사 시설 요새화, 민간인 방호대책 등을 넘어 모든 주민의 육지 이주(移住)를 포함한 국가적 방책을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절실한 과제를 일깨운다.
이런 엄중한 현실에서 고작 교전규칙이나 대북정책을 논하는 것은 한가하다. 게다가 육지로 피난한 연평도 주민들이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소식은 대한민국과 정부가 겨우 이 수준인가 개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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