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운영이 어려워진다니 (예산 지원을 요구하는) 서명 좀 해주세요."
16일 오후 노년층을 대상으로 옛 영화를 상영하는 실버극장 '허리우드 클래식'. 1975년 제작된 이만희 감독의'삼포가는길'이 막을 내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관객 200여명이 몰려 나오자 김은주(36) 사장과 자원봉사자들이 관객에게 호소하며 바삐 움직였다. 관객들은 삼삼오오 몰려와 김 사장의 손을 꼬옥 잡은 채 등을 토닥였고, 각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서명을 남겼다. 김 사장은 "그 동안 집을 담보로 3억여원 대출을 받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차도 팔았어요. 이제 더 이상 팔 게 없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비를 털어 클래식 극장이라는 노년 문화공간을 일궈 극장으로는 국내 유일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는 등 화제가 되기도 했다.(본보 2009년 11월 24일자 33면)
그런 김 사장의 어깨가 요즘 축 처져 있다. 올해 처음 허리우드 클래식에 3억원을 지원한 서울시가 10월 미근동에 세운 또 다른 노년층 상영관 청춘극장을 지원하면서 '중복지원'을 이유로 내년부터 허리우드 클래식에 지원하지 않겠다고 얼마 전 통보한 것이다. 김 사장은 "서울시도 다른 상영관을 개관할 정도로 (문화활동에서 소외된) 노년층을 위해 꼭 필요한 건데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니 납득할 수 없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2009년 1월 개관해 지난해에만 약 2억 5,000만원 적자를 봤던 김 사장은 서울시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 덕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별들의 고향', '미워도 다시 한번' 등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의 필름을 구매해 상영할 수 있었다. 국화빵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흘러간 노래를 들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 '추억더하기' 부스도 6월부터 출입구 옆에 설치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터였다. 자치구 노인복지센터 경로당 등 10곳을 방문해 영화를 상영해 주는 '찾아가는 영화관' 사업도 벌였다. 덕분에 지난해 6만2,000여명이던 관객은 올해 11월 현재 9만여명으로 늘었고, 연말까지는 1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적자 폭도 대폭 줄었다.
노년 관객은 잠시 잊었던 감성을 되찾았다. "나한테 눈물이 남아 있는지 몰랐어", "영화관 오는 맛에 화장하려고 화장품도 샀어" "김 사장 주려고 캔 커피도 처음 사봤네"라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커피, 떡, 귤을 사다 주는 단골은 물론 땅도 기증하겠다고 하는 분도 계셨는데 너무 부담스럽고 제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 같아 사양했어요. 애초 돈 벌겠다고 시작한 것도 아니니까요.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일은 계속 할 겁니다." 김 사장은 그리 말했다.
내년 극장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퍼져나가자 관객들은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보도를 봤는데 (지원 중단해) 여기 문 닫으면 우린 이제 어디 가나"(이형기ㆍ80), "노인들 두 번 죽이는 일이야"(이상구ㆍ78), "여 사장이 안타깝네"(장청자ㆍ74) 등의 반응을 보였다. 15일부터 열흘간 펼친 서명운동에 관객 2,700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지원 연장을 요청하는 내용의 탄원서와 함께 서명서를 25일 서울시의회에 전달했다.
김 사장도 26일 청와대를 찾아가 서명서와 탄원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필요하다면 문화체육관광부 등 다른 정부 유관기관에라도 찾아가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간청할 거예요." 김 사장 사무실 한 쪽 벽면에는 각별한 관심과 봉사정신으로 서울시 노인복지 증진에 헌신한 공로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서 지난해 12월 29일 받은 표창장이 걸려 있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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