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맨땅에 헤딩하기'로 세팍타크로에 입문했던 소녀들이 '골리앗'을 상대로 금빛 발차기 사냥을 시작했다. 피 끓는 청춘을 '발차기'에 바친 한국 여자 세팍타크로의 1세대 박금덕과 안순옥(이상 29ㆍ경북도청), 김미진(27ㆍ마산시체육회)은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아시안게임에 임하고 있다.
국내에서 TV 중계가 단 한 차례도 없었을 만큼 철저히 외면 받았던 여자 세팍타크로. 후배들에게는 더 이상 '비인기 종목'이라는 유산을 안겨줄 수 없다는 짐을 짊어진 그들은 '묵직한 스파이크'로 아시아 정복을 꿈꾸고 있다.
시저스킥·롤링킥 등 화려한 발차기 경연
세팍타크로는 화려한 발차기의 경연장이다. 시저스킥, 롤링킥 등 곡예에 가까운 발차기들이 팬들을 매료시킨다. 박금덕과 안순옥, 김미진 3인방도 '발차기의 묘미'에 빠져들어 세팍타크로에 입문했다. 주장 박금덕은 "세팍타크로는 화려한 발차기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안순옥은 "공이 코트에 내려 꽂히는 순간의 짜릿함은 직접 해보지 않고선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미소를 보였다.
공중에서 내려찍는 스파이크의 세기는 상상을 불허한다. 남자의 경우 스파이크가 150㎞에 육박해 야구와 비슷한 정도다. 여자 선수도 100㎞가 넘는 호쾌한 스파이크를 때려내기 때문에 스릴 넘치는 랠리가 오고 간다. 김미진은 "여자도 공중 스파이크 기술인 롤링킥을 할 때 270도까지 회전한다. 이 같은 스파이크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다리 찢기와 혹독한 훈련은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직업병 땜에 날씨도 예측
2인제 대표팀의 막내 김미진의 눈 주위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팀 이벤트 경기 도중 공에 맞아서 생긴 상처였다. 100㎞가 넘는 스파이크를 받아내고 쉼 없이 발차기를 해야 하는 격렬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부상 위험도 크다. 박금덕은 "입술이 찢어지고 눈이 붓는 것은 일반적이다. 때때로 이빨이 부러지는 선수들도 속출한다"고 씁쓸한 입맛을 다졌다.
직업병도 있다. 안순옥은 "발, 발목, 허리, 골반이 하루도 편안 날이 없다. 이로 인해 비가 오는 날은 이러한 부위들이 쑤셔 선수들이 우산을 준비해온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자주 점프를 해야 하고 다리를 벌려야 하기 때문에 골반을 많이 써야 한다. 김미진은 "골반이 막 쑤셔 이상이 있는 줄 알고 X레이를 찍어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의사 선생님이 직업병이라 하더라"라고 말했다.
'세팍타크로' 단어만 알아줘도 환희
14년 전 여자 세팍타크로 고교팀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환경이 열악하다. 실업 6개, 고교 13개 등 여자 선수 등록 수를 다 합쳐도 150명 남짓이다. 반면 세팍타크로는 태국에선 생활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태국은 세팍타크로 전체 등록 선수만 100만명(추정치) 이상으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자도 선수 등록 수가 1만5,000명이 넘는다. 안순옥은 "태국의 세팍타크로 경기장은 항상 만원이다. 자리가 부족해서 경기장 밖에 서 있는 팬도 많다"며 "태국의 유명 세팍타크로 선수들은 CF도 찍고 연예계도 진출하는 등 인기가 높다"고 부러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세팍타크로 경기가 열리면 관계자와 가족들만이 옹기종기 모이는 게 현실이다. 박금덕은 "친구들조차 세팍타크로를 잘 몰라 그냥 족구와 비슷한 종목이라고 설명한다"며 입술을 샐쭉거렸다. 이로 인해 이들 3인방은 세팍타크로에 대한 단어가 혹 TV 매체에 나오기라도 하다면 입 꼬리가 올라간다. 안순옥은 "영화 마더에서 세팍타크로 이야기가 나오는 데 그 단어 한 마디에 너무나 기뻤다"고 표현했다.
25일 인도네시아와 B조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 여자 세팍타크로 2인제 팀은 2-1로 승리해 사상 첫 국제대회 우승 도전에 상쾌한 첫 발을 내디뎠다. 에이스 박금덕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동메달이 최고 성적이다.
국제 대회에서도 동남아에 밀려 우승한 적이 없다"며 "마지막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김형산 여자대표팀 감독은 "여자 세팍타크로가 기량적으론 세계 3위권 내로 올라왔다. 정신력과 컨디션 여부에 따라서 메달 색깔이 결정될 것"이라고 메달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세팍타크로(Sepaktakraw)란?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세팍타크로는 말레이시아어로 '차다'는 뜻의 세팍(sepak)과 타이어로 '공'을 뜻하는 타크로(takraw)의 합성어다. 1.45m 높이(남 1.55m)의 네트를 사이에 두고 대결을 펼치는 세팍타크로는 족구와 유사하다. 그러나 세팍타크로는 바닥에 공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점에서 족구와 큰 차이가 있다. 원래 등나무 줄기로 만들어 12개의 구멍을 가진 공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특수 플라스틱 재질의 공으로 경기를 진행한다. 1,2세트는 21점, 3세트는 15점으로 승부를 내며 두 세트를 먼저 내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경기 종류에는 팀(3인제 단체전) 이벤트, 레구(3인제 경기) 이벤트, 2인제가 있다.
광저우=김두용기자 enjoyspo@s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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