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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배복철·김치백씨 분향소,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앞이 캄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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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배복철·김치백씨 분향소,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앞이 캄캄"

입력
2010.11.2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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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분향소에 들어선 소영(30)씨는 아버지(고 배복철씨ㆍ59)의 영정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통곡했다. 슬픈 서해를 건너온 부친의 시신을 인천항에서 인계받아 병원으로 모시는 동안 억눌렀던 설움과 슬픔이 갑자기 복받친 것이다. 25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숨진 민간인 희생자 2명의 빈소가 차려진 인천 남동구 길병원 내 합동분향소에는 밤새 유가족들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연평 해병부대에서 영내 장교숙소 공사를 하다 북한군의 포격에 참변을 당한 고 배복철씨와 고 김치백(60)씨는 이날 해경 502함으로 서해를 건너 뭍으로 돌아왔다. 미리 인천항에 나와 기다리던 유족들은 시신이 함정에서 내려지는 순간부터 서러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고 김치백씨의 처남 서용욱(60)씨는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하다"며 탄식했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유족과 조문객들은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통곡을 이어갔다. 고 배복철씨의 동생 기남(53)씨에게는 형의 죽음이 더욱 그랬다. 수십 년을 미장공으로 함께 일해온 형제는 당시 현장에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기남씨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려 건물 지하로 도망쳤다 올라와보니 자욱한 연기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다"며 "그 속에 형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오열했다. 공사현장에서 미장반장으로 일해오던 고인은 일당 13만원을 받고 17일 연평도 공사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기남씨는 "이달 말 미장 작업이 끝나면 함께 뭍으로 나와 고향을 가기로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 김치백씨의 영정 앞에 선 유족과 조문객들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웃 사촌 임성희(69)씨는 "고인과 함께 살던 지역(인천 서구 가정동)이 재개발로 이사를 갈 수 밖에 없게 돼서 연평도로 일감을 찾아 나섰다"며 "부족한 보상비를 충당할 이사비용이라도 벌겠다고 섬으로 들어간 게 꼭 두 달째인데 시신으로 돌아왔다"며 안타까워했다. 수 십 년간 공사현장을 누빈 베테랑 작업반장이었던 고인은 수년 전 발병한 뇌혈관 장애에다 올 여름 갑상선 암 수술까지 받는 바람에 최근까지 일손을 놓았다가 포격 직전 연평도로 들어가 변을 당했다.

유족들은 오후7시 30분께 송영길 인천시장이 빈소를 찾자 그 동안 쌓아두었던 설움과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내기도 했다. 송 시장은 "안타깝다"며 "어떻게 고인을 편안히 보내드릴지 잘 상의해 보겠다"고 위로했지만 유족들은 "모든 사태를 TV를 보고서야 알았는데, 정부가 빈소도 한마디 상의 없이 병원에 차려놓고 누구 하나 상황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며 일제히 항의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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