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내전의 땅을 탈출해 8년간 국내에 체류하며 한국 국적을 갈망해 온 마라토너 버징고 도나티엔(32)씨(본보 3월 4일자 37면 보도)가 마침내 ‘한국인 김창원’이 됐다.
25일 오후3시 경기 과천 정부청사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버징고씨는 일반귀화 허가를 받은 20명을 대표해 국적 증서를 받고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영업의 달인, 대학 졸업, 마지막으로는 결혼.”
수여식이 끝나고 1시간이 지나도록 버징고씨는 국적증서를 손에 꼭 움켜쥔 채 놓지 않았다. 그는 “귀화 공부를 하면서 한국 역사가 가장 어려웠다”며 “사실 한 차례 낙방하고 두 번째 도전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2005년 6월 난민으로 인정받은 뒤 5년 만에 한국 국민이 된 버징고씨는 역대 두 번째 난민 출신 귀화자가 됐다.
버징고씨의 모국인 브룬디는 1990년대 후투족과 투치족 간 내전으로 30여만명의 희생자가 나온 곳이다. 투치족이던 부모님도 그가 15세이던 93년 후투족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의 여동생과 남동생은 브룬디에 남아 있고 두 형은 미국과 벨기에에서 살고 있다. 버징고씨는 “10대 시절 내전과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한 뒤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마라톤은 주름진 그의 인생에서 한 줄기 빛이었다. 브룬디에서는 선수 경력이 전무했지만 2003년 8월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하고 싶어 감독과 코치 없이 무작정 한국 땅을 밟았고 그 길로 눌러앉아 난민 신청을 했던 것이다. 크고작은 국내 마라톤대회에서 거둔 그의 성적 덕에 자동차 부품회사인 ‘현대위아’에 입사도 할 수 있었고 지명에서 땄다는 한국 이름 ‘창원’도 얻었다. 버징고씨는 2시간 18분대의 마라톤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지난 9월 강원 철원에서 열린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등 국내 대회에서 8번이나 우승한 실력파다.
마라톤 선수이자 직장인, 그리고 대학생(경남대 경영학 3학년)인 버징고씨의 한국인으로서의 최종 목표는 최고 ‘영업맨’이 되는 것. 그는 “현재 대중국 부품 수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학업을 마친 뒤엔 내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 부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버징고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연애할 시간도 없어요”라며 쑥스럽게 웃더니 “그럼 소개시켜 주실래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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