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치인과 공직자들을 무차별로 사찰했다는 증거들이 잇따라 제시되면서 불법사찰 사건은 검찰 수사가 종결된 후에 도리어 의혹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추가 범죄 정황은 없었다" "이미 조사를 했던 사안"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애초부터 실체적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가 없던 검찰이 사안을 축소ㆍ은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4일 검찰에 따르면 이 사건 수사팀은 지난 7월9일 총리실 압수수색에서 지원관실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을 확보했다. 수첩에는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나라당 친박계 이혜훈 의원, 충남 홀대론을 제기했던 이완구 전 충남지사, YTN 및 노동계 인사들에 대한 사찰 정황이 기재돼 있다. 논란이 되자 서울중앙지검 신경식 1차장 검사는 "수첩에 이름이 적혀있는 것만으로 범죄의 구성요건이 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앞서 같은 수첩에서 'BH 지시사항'이라는 문구가 공개된 직후 신 차장은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사찰 외에) 다른 사찰 정황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신 차장이 당시 진실을 말하지 않은 셈이다.
물론 검찰 논리대로 수첩에 나온 이름들이 지원관실의 실제 사찰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원 전 조사관도 "언론에서 거론되거나 주변에서 들은 이름을 메모할 것일 뿐"이라고 검찰조사에서 진술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하지만 수첩에서 지원관실의 업무영역을 넘어선 언론 및 노동계 인사들의 이름이 거명됐다면 검찰이 적어도 사찰여부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확인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검찰 내부에서조차 일고 있다. 지원관실이 정치인과 공직자가 아닌 일반인을 사찰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 기소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초기부터 수첩을 확보하고도 수첩에 등장한 당사자나 그 주변인물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고, 원씨의 진술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만을 토대로 범죄가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신 차장은 "입증가능성이 있고, 범죄사실이 구성돼야 오 시장이나 YTN 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할 수 있다"며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로 크로스 체크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 차장은 "검찰은 어떤 기관을 감찰하는 곳이 아니고, 불법이냐 적법이냐를 판단하는 곳이다. 일일이 이런 저런 내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수첩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실제 사찰했는지 여부를 컴퓨터에 기록된 업무자료를 토대로 확인했다지만, 검찰이 확보한 컴퓨터는 지원관실 직원들이 디가우저 등으로 증거를 인멸해 사실상 확인불능 상태였다는 것도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또 검찰은 지원관실 직원들을 상대로 추가 사찰 여부를 조사했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범죄사실을 털어놓을 리 없는 피의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의 해명은 추가적인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검찰이 별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심증만 더욱 키워줬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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