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니지만 인라인롤러는 한때 인기를 끈 적이 있다. 2001년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한국 인라인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궉채이(23) 때문이었다.
특이한 성(姓)과 연예인 뺨치는 외모, 여기에 실력까지 두루 갖춘 궉채이는 '인라인 요정'으로 불렸다. 비인기 종목 선수로는 드물게 CF모델로도 발탁됐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치면 혜성같이 등장한 금메달리스트, 수영의 정다래(19)와 바둑의 이슬아(19) 같다고 할까.
그런 궉채이 때문에 눈물을 곱씹는 이가 있었다. 우효숙(24ㆍ청주시청)이었다. 우승을 번갈아 차지할 정도의 라이벌이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궉채이가 독차지했다. 미웠고 분했다. "그땐 어렸었죠. 무조건 채이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실력이 부쩍 늘더라고요."
궉채이가 운동과 멀어지는 사이, 우효숙은 어느새 '인라인 여제(女帝)'가 됐다. 고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태극마크를 놓치지 않았다. 2003년 베네수엘라 세계선수권 EP(제외+포인트) 장거리 1만m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금메달을 차지했고,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선수권 사상 최초로 3연패를 달성했다.
우효숙은 예상대로 광저우에서 금빛 레이스를 펼쳤다. 24일 광저우 벨로드롬 내 인라인롤러 경기장에서 열린 EP 1만m 결선에서 31점을 획득해 우승했다. EP 1만m는 트랙을 50바퀴 돌면서 매 두 바퀴마다 순위에 따라 점수를 주는 방식이고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다.
가슴 아픈 금메달이었다. 편찮으신 할머니(고 이정순씨)에게 금메달을 걸어 드리고 싶었는데 지난 주 돌아가셨다. 우효숙은 몰랐다. 강대식(43) 인라인 대표팀 감독은 "사실 지난 주에 효숙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부모님과 상의해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시상식 전에서야 비보를 접한 우효숙. 터져 나오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일하느라 주로 할머니 손에 커 서로에게 더욱 애틋했던 사이였다. "3년 전부터 풍이 왔는데 그 뒤로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셨어요. 운동하느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열린 남자 EP 1만m 결선에서도 손근성(24ㆍ경남도청)과 최광호(17ㆍ대구경신고)가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쓸었다. 손근성은 지난해 9월 세계선수권 3위, 올 7월 아시아선수권 2위에 그쳤던 아픔을 광저우에서 말끔히 털어 냈다.
광저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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