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도발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영해를 침범하거나 포 사격이 이뤄지는 등 갈수록 대범해지고 국지전의 양상을 띠며 확대되고 있다. 특히 영해가 아니라 남한 영토를 타깃으로 사격 도발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소규모 게릴라나 간첩, 국제테러 등의 도발이 이뤄졌다. 북한은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인 김신조 일당을 청와대에 침투 시키더니, 미 해군 함정인 푸에블로호를 납치했다. 북한군은 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작업하던 미군 장교 두 명을 살해하는 '도끼 만행 사건'을 일으켜 미군에게도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의 도발은 해외에서도 자행됐는데 피해 규모도 컸다. 83년 10월9일 미얀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 공작원이 미리 설치한 폭탄이 터져 정부 각료 등 17명이 순직해 국제적인 분노를 샀다. 87년에는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 의한 KAL기 폭발 사건으로 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측과 국제사회의 반발이 일 때마다 도발행위 자체를 부인하며 '남측의 조작극'이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90년대 이후로는 남한 영토 내로 직접 침투하거나 함정을 이용해 교전하는 등 적대행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한은 96년과 98년 동해상으로 무장공비가 탑승한 잠수함을 침투시켰다가 우리 군에 발각됐다. 이후 주로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 중인 서해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99년 6월 제1연평해전으로 남북한 해군이 해상에서 처음 교전하면서 서해는 북한이 도발하는 단골 장소가 됐다. 2002년 6월 발생한 제2연평해전에서는 우리 해군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하는 큰 피해가 나기도 했다.
한 동안 서해에서 북한의 움직임이 잠잠해졌지만 지난해 11월 대청도 부근에서 양측이 충돌해 다시 긴장이 고조됐다. 특히 올해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피해를 냈다. 해병 46명이 영문도 모르는 채 숨졌고, 수색작업에 나선 해군특수전여단(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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