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경제위기가 정치ㆍ사회 위기로 번졌다. 긴급 구제자금을 받아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대형은행을 살리기 위해 대신 허리 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시장 친화적 규제완화 및 법인세 감세 조치로 이른바 '켈틱 타이거'로 불리며 호황을 누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제3국으로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이뤄졌던 19세기 감자흉년 당시의 상황이 젊은층에서 재연될 조짐도 있다. 낮은 법인세에 이끌려 아일랜드로 온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은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등 아일랜드의 위기는 이제 국내로 방향을 튼 모습이다.
브라이언 코웬 아일랜드 총리는 22일 혼란이 가중되자 하원을 해산하고 재신임을 받겠다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코웬 총리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최대 1,000억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것과 관련, 당 안팎으로부터 "경제 주권 포기"라는 비판과 함께 사임 요구를 받아왔다. 그는 "물러나지 않겠다"면서 "긴축재정안 처리를 늦출 경우 아일랜드에 심각한 해가 된다"고 국민 이해를 요청했다. 코웬 총리는 이어 재정긴축을 골자로 한 예산안과 구제금융 협상을 마무리 한 뒤, 내년 1월 하원을 해산해 국민 재신임을 묻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오는 25일 보궐선거가 예정된 곳에서 연립정부가 패할 경우 총리에 대한 사임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또 연금 및 복지 축소를 골자로 한 긴축안이 총리의 바람대로 즉각 통과될지 여부도 불분명해 이 문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AP통신은 23일 "EU 구제금융이 아일랜드 정부를 위험에 몰아넣었다"고 보도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