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해안포 사격을 감행한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훈풍 조짐이 일던 남북관계의 긴장 수위를 일거에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가 지난 3월 천안함 침몰 직후 때처럼 급속도로 경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남북 사이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굽히지 않자 북한은 남측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올 여름 극심한 홍수 피해를 겪은 북한은 9월 초 “쌀과 수해 복구에 필요한 시멘트, 굴착기 등을 보내달라”며 남측에 손을 내밀었다. 비록 우리 정부는 인도주의 차원에 국한한 지원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남북은 이후 적십자회담과 1년 만의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잇따라 성사시키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 때문에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추진 등 ‘천안함 출구 전략’을 적극 모색할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연평도 도발은 북한의 의도가 남북관계 개선이 아닌 북미대화에 있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북한은 최근 미국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에게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면서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뮈니케(선언)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비핵화는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위기 타개의 근본적 해결책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만큼 정부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부는 25일 예정된 남북 적십자회담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문제를, 북측은 금강산관광 재개와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점쳐졌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 타격이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적십자회담이 인도주의 범주에 포함되는 사안임을 감안해도 남북 대화를 지속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