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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사춘기-야생동물 보호구역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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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사춘기-야생동물 보호구역 6

입력
2010.11.2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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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인디애나 주의 단풍나무들은 17년마다 나이테를 부쩍 키운다 17년 매미(Magicicada septendecem)가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허리와 배에 힘을 주는 것이다

이제 다 큰 매미들이 졸업식 날 교복을 찢은 아이들마냥

새빨갛게 몰려나온다

줄무늬다람쥐가 탈자를 골라내듯 매미들을 먹어치워도

포식한 새들이 나는 걸 포기해도

매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5월은 푸르구나, 다 자란 매미들은

수컷만 폭주족이다

매미의 발음근은 소음기를 뗀 오토바이여서

인디애나 주를

미시시피 강까지 떠메고 갈 기세다

환골은 없이 탈태만 하는 그 어린것들을 위해

17년 동안 나무는 수액을 내었다

매미는 나무에 안겨 어른이 되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죽는다 열흘 동안의 청춘,

그다음은 없다

1조 마리가 한꺼번에 비료가 되었으므로 나무들은 17년마다 나이테를 부쩍 늘인다 어린것들 대신에 나이를 먹었으므로 뱃살이 좀 붙는 것이다

● 입추에서 처서 사이는 제가 한 해 중 두 번째로 좋아하는 절기입니다. 처서가 가까워지면 하늘이 예뻐지기 시작하죠. 고적운들이 뭉게뭉게 떠가고, 달의 모서리는 더없이 날카롭고, 바람은 시원하죠.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아주 미묘하게 바뀌기 때문에 그 보름 동안에는 온몸의 감각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처서가 무슨 지구의 종말의 날이라도 된다는 듯이 앞다퉈 매미들이 세상을 뜨는 시기도 그 즈음입니다. 공원길을 달리다보면 바닥에 떨어진 매미가 어찌나 많은지 안 밟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하는 때이기도 하죠. 그리고 처서 지나면 여름 매미들은 잘 모르는 세상. 여름에 매미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면 거기다 대고 소리 치세요. 눈이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매미들은 계속 울어댈 겁니다. 열흘 동안의 청춘, 매미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눈 따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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