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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진의 화려한 싱글은 없다] <41>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대는 한국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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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진의 화려한 싱글은 없다] <41>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대는 한국의 남자

입력
2010.11.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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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한 이땅의 남성들

알고 지내는 30대 직장인과 대화하다가 가슴이 쫌 짠했습니다. 좀 멀다 싶은 수영장을 다니는 그에게 왜 직장 근처에 있는 헬스클럽에 안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월 10만원이 넘는 걸요." "건강을 위한 건데, 그 정도도 투자 못하나?" "마누라한테 혼나요." 한달에 수십 만원을 내는 영어 유치원에 자식을 보내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10만원도 못쓰는 그가 바로 대한민국 가장의 현주소입니다. 저 또한 그리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자의 일생'이라는 소설이 있고, 한 많은 여자의 삶…, 이런 말을 많이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측은한 존재를 남자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의 일생을 생각해 봅시다. 활력과 의욕이 넘치는 20대 초중반을 국가에 봉사합니다. 이어 취업전쟁에 뛰어들어 겨우 직장을 얻으면 결혼비용을 모아야 하지요. 남녀 평등시대라고는 하나 결혼비용은 여전히 남자의 부담이 몇배 더 많습니다.

결혼해서는 부모, 가족을 부양합니다.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여자는 상대적으로 빨리 은퇴하니 결국 책임은 남자에게로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기러기아빠도 되고, 아이들이 크면 뒷방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요즘 남자의 일생입니다. 오늘날 한국 남자들은 지난 세월 부모들의 어두운 면만 물려받았습니다. 유교시대의 잔재이지요.

이제는 남존여비와 정반대가 됐건만, 부모들이 살아온 그 시절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채 여전히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존재가 바로 남자입니다. 여자들은 아직도 피해의식이나 보복심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기를 펴고 살기에는 참으로 힘든 세상입니다. 미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며칠에 한번씩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이혼이 성립되는 주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 남자들은 애정 표현에 서툴다고 들 하지요. 사랑한다는 말은 잘 못할지 모르지만, 세계 어느 남자가 한국 남자처럼 가족에게 헌신적일는지요?

남자대접? 그게 뭔가요…

한국 남자들의 인생이 서러운 이유 중 하나는 어느 순간 모든 관심이 자녀들에게로 쏠린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가정의 중심입니다. 제 이웃 하나는 아이 학교를 따라 이사합니다. 그 아빠는 2시간 가까이 걸려 출퇴근을 해야 합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부모가 고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옛날에는 부모 가까이에 살았지만, 이제는 아이들 학군 따라 옮겨 다닙니다.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아이 교육에 투자합니다. 그 생활비에는 아빠의 용돈, 담뱃값도 포함됩니다. 아이 인생을 위해서라면 그깟 작은 즐거움 쯤은 포기해야 한다나요. 그럼, 아빠의 인생은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 생각을 할까요.

아내는 "요즘 세대에 효를 기대하느냐. 자식 덕 볼 생각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못박곤 합니다.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서글픈 건 어쩔 수 없군요. 모름지기 지구상에서 가장 희생적이면서도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 존재가 한국 남자들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바랍니다.

데이트할 때도 거의 남자들이 돈을 냅니다. 결혼할 때도, 결혼 후에도, 남자들의 어깨는 참으로 무겁기만 합니다. 맞벌이가 늘면서 여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가정을 위해 부부가 함께 돈을 버는 것인데, 왜 남자들은 당연한 거고, 여자들은 특별한 것인가요. '그 옛날에 너희들이 얼마나 여자들을 멸시했니. 이제는 우리 차례'라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요즘 남자들 참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욕먹을 각오하고, 남자들 편 좀 들었습니다.

■ 남녀본색

● 2009년 평균 결혼비용 및 남녀 부담 비율

'억' 소리 나는 결혼비용. 남과 여는 결혼비용을 얼마나 부담할까. 결혼정보회사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는 2009년 결혼한 신혼부부들 가운데 분석 가능한 자료를 제공한 351쌍을 대상으로 결혼비용의 남녀 분담비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1쌍이 지출한 결혼비용은 총 1억7,542만원이었다. 신랑 부담액이 평균 1억2902만원으로 전체의 73.5%였고, 신부 측은 평균 4,641만원으로 신랑 측 비용의 3분의 1 정도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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