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 배워서 고생 많이 하고 살았어유. 책은 그렇잖아.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고, 아비가 잘 되면 아들도 잘 되고. 배우는 게 얼마나 중요하요. 내가 대학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배우질 못해서 새우젓이나 팔고 있지. 근데 공부는 어렸을 때 하는 게 중요하더라고. 그래서 책을 좀 사서 주라고 부탁했지. 애들이 돈이 없어서 책도 못 보면 우리나라 미래가 어쩔거유.”
서울 노량진 시장에서 젓갈을 팔아 번 돈을 수 차례 장학금으로 기부해 ‘젓갈 할머니’로 알려진 류양선(78) 할머니가 이번에는 1년 동안 부은 적금을 털어 수천만원 상당의 한국어대사전을 구입해 충남 서산과 서울 동작구 일대 초ㆍ중학교에 기증했다.
23일 고려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국어대사전을 발간한 이 대학 민족문화연구원은 최근 출판 유통업을 하고 있는 이종현(63)씨에게 110세트(한 세트당 3권)의 사전을 판매했다. 이씨는 연구원에 “류 할머니가 사전을 사서 학교에 기증을 하려고 한다”며 구매 의사를 밝혀 온 것. 정가대로 한다면 5,800여 만원이지만 연구원에서는 반값인 2,900여만원에 선뜻 판매를 했다. 이씨는 김흥규 민족문화연구원장이 17년 작업 끝에 7,000여쪽에 달하는 한국어대사전을 펴냈다는 언론보도를 본 류 할머니가 어린 학생에게 이를 사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전했다.
시작은 소박했다. 류 할머니는 장사를 해서 번 돈이 모일 때마다 5세트나 10세트씩 구입을 해 기증했다. 그러다 지인들의 권유로 한꺼번에 사전을 사 기증을 하는 쪽으로 마음 먹었게 됐고, 최근 구입한 사전이 바로 그 결실이다. 지난 1년 가량 적금을 부어 마련한 3,000여만원으로 사전을 구입한 것이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관계자는 “이씨로부터 류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반값에 사전을 판매하고 할머니가 원하는 곳에 책을 배달해줬다. 그 전에도 조금씩 구입을 한 것으로 아는데 다 합치면 150세트로 정가로 하면 8,100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책은 충남 서산 일대와 노량진 시장이 있는 동작구 일대 학교로 보내졌다. 류 할머니는 앞으로도 300세트 정도 더 구매해 기증할 뜻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강지원기자 sty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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