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국내에서 괜찮다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워낙 어려워 적당한 외국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이 대세지만, 외국 명문대학을 겨냥한 유학도 부쩍 늘었다. 이런 아이들이 낯선 땅에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국내와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과목이 체육과 작문이라고 한다. 영어로 생각하고 쓰는 작문의 어려움이야 짐작하고도 남지만, 체육이 어렵다는 말은 쉬이 수긍하기 어려웠다. 남학생은 학년별로 매일 4~7㎞를 뛰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말이 체육이지 군대의 구보보다 더한 체력 단련이다.
■ 그런 체력 단련의 기억이 있긴 하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체력장을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훈련이 시작됐다. 체육시간은 물론이고 방과 후까지 이어지기 일쑤였다.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였다. 자전거 튜브를 하루에 수백 번씩 당겨 턱걸이와 윗몸 일으키기를 위한 팔 힘과 복근을 키웠고, 무릎을 가슴에 닿을 정도로 높이 들어올리는 제자리 뜀박질로 100㎙ 달리기에 대비했다. 자전거 튜브는 수류탄 던지기 훈련에도 쓰였다. 으레 단체 벌로 주어진 운동장 뛰어 돌기도 1,000㎙ 달리기 연습인 셈이었다.
■ 그 성과는 그 해 가을 체력장 전국 최고의 성적으로 금세 나타났다. 중3 때도 체력 단련은 계속됐다. 고교 연합고사 성적에 포함된 '입시 체력장'성적이 돋보인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 훨씬 높은 기준이 적용된 '측정 체력장'결과도 놀라웠다. 전체 700명 가운데 40여명이 '특급'인증을 받았고, 그 가운데 처음 도입된 추첨 배정을 거쳐 공립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1년 등록금 면제 형식의 장학금을 받았다. '측정 체력장' 제도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지만, 집중적 체력단련의 효과는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 뛰어난 한국 학생들이 외국 명문대학 진학 후 상대적 성취가 떨어지는 주된 요인으로 흔히 체력 열세가 지적된다. 그것만으로도 체력 단련은 중ㆍ고 교과과정의 핵심이 되어 마땅하다. 더욱이 그 효과는 체력 강화에 그치지 않는다. 특별히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과 욕구 불만을 흩뜨리는 데 고강도 신체활동보다 나은 게 없다. 아이를 공부기계로 여기는 학부모들의 우려와 반발만 아니라면 당장 대학입시에 체력장을 되살릴 만하다. 운동 뒤의 피로는 억지 공부가 안기는 짜증과 비교가 되지 않고, 진짜 공부는 대학에 들어가서 시작된다는 각성은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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