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재협상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일방통행 식 협상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2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통상절차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고 있다.
22일 외교통상부 등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사태가 불거진 2008년 이후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의된 통상절차법 제정안이 모두 5건에 달한다. 법안마다 일부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내용은 ▦통상협상의 주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한 통상위원회를 총리실 산하에 두고 ▦민간 및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민간자문위원회를 설치하며 ▦협상 진행 과정에 대한 국회 보고를 의무화하자는 것. 수많은 통상조약과 협정이 체결되고 있지만, 통상에 대한 권한이 정부에 집중돼 있어 이를 견제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18대 국회 개원 당시인 2008년 중순 여야 교섭단체간에 통상절차법을 제정하기로 합의까지 했지만, 지금까지 이 법안들은 여당 일각 및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상임위(외교통상통일위)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통상절차를 법으로 규정하게 되면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 조약체결권과 배치된다”며 “더구나 통상 협상에 대해 정부가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한미 FTA 협상에 대해 밀실ㆍ졸속 협상이라는 비판이 빗발치면서 다시 통상절차법 제정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는 분위기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FTA 체결과정과 국회의 역할 강화 필요성’ 보고서에서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통상협상 과정에서 국민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장치나 국회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행정부 중심의 통상협상에서 벗어나 국민과 국회의 참여를 강화하는 통상절차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야권도 다시 공세 고삐를 죄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최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의 삶과 나라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통상교섭을 밀실에서 통상관료들이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통상절차법을 하루 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상임위에 계류 중인 통상절차법안을 통과시켜 정부의 밀실협상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역시 내부에서 통상절차법 제정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현재도 국회에 비준동의권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후적으로 ‘모 아니면 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 협상 내용 하나 하나를 수정할 수단은 없다. 때문에 의회권력이 워낙 강한 미국처럼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행정부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장치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승환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절차법이 마련돼야 행정부가 협상에서 밀릴 때 국민들을 핑계 삼아 버틸 수 있다”며 “지금처럼 정부 홀로 주도해서 협상을 진행하면 빠른 타결이야 가능하겠지만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협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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