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 위 그린혁명' 시동… 2020년 100만대 생산 '글로벌 빅3' 질주
'이제는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시장 선도자(First Mover)로 나선다.'
정부가 차세대 기술로 미래 먹거리를 육성, 10년 후 100조 원 시장 창출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선정한 5대 조기 성과 창출형 프로젝트가 바로 그 것이다. 차세대 전기차 기반 그린 수송 시스템, 정보통신(IT) 융ㆍ복합 기기용 핵심 시스템 반도체, 코리아 마이크로 에너지 그리드(K-MEG), 고효율 대면적 박막 태양전지, 글로벌 선도 천연물 신약 등 5개 분야가 지목됐다.
이들 미래 산업은 한국이 강점을 지닌 분야인 동시에 잠시라도 한 눈을 팔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 수 밖에 없는 격전의 현장이다. 이에 본보는 5개 분야별로 우리 산업과 관련 기업들의 현주소와 미래 방향을 점검하고, 경쟁국의 현황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2020년 11월 어느 주말. 회사원 김모(29)씨는 여자 친구와 서울 후암동의 충전소에서 만났다. 춘천 청평사에 나들이 가기 위해서다. 전기차를 충전하는 10여분 동안 충전소의 쇼핑 센터에서 음식과 과자를 산다. 최근 충전소는 갈수록 대형화돼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전기차 충전 시설과 정비센터는 물론 카페와 쇼핑 센터까지 갖춰져 있다.
충전을 마치고 시동을 건다. 시동음은 평소 좋아하는 유명 스포츠카 페라리의 소리에 맞춰져 있다. 내비게이션 버튼을 누르자 차량 앞면 유리 전체가 터치 스크린으로 변한다. 그는 최근 개통한 서울-춘천 간 지능형 도로(스마트 하이웨이)를 택했다. 도로와 차에 내장된 컴퓨터가 정보를 주고 받아 차는 스스로 움직인다. 여자 친구와 차 전면의 스크린을 통해 TV 시청과 인터넷 게임을 한 지 1시간 30분 만에 목적지 춘천에 도착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전기차 시장은 향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된다. 인프라 구축이 갖춰지는 2020년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커져 2030년께는 전체 자동차 시장의 10%(3,400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각국별로 인프라 구축과 연구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정책연구팀은 최근 2030년께 전기차 시장이 4,000억 달러(약 45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1,700억 달러(약 19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충전소 등 인프라 시장과 1,000억 달러(약 113조원)로 추정되는 2차 전지 시장은 별도다. 결국 전기차만으로 750조원 규모의 직접 시장이 새롭게 열리는 셈이다. 일각에서 제전기차 등장을 제조업 분야에서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식경제부도 최근 차세대 전기차 기반의 그린 수송 시스템을 천연물 소재 신약, 시스템 반도체, 박막 태양전지, 한국형 에너지망(에너지 그리드) 등 5개 미래산업 선도기술 개발사업 가운데 맨 윗머리에 내세웠다. 정부는 전기차를 둘러싼 각종 기술을 선점, 2020년까지 1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해 매출 40조원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우리나라는 전기차 글로벌 3대 강국 반열에 오른다.
이같은 청사진은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완성차와 배터리 제작 기술 등 우리 산업 기반이 글로벌 상위권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또 수도권에 밀집된 대도시는 국내외에서 중국, 일본과 함께 전기차 시대를 열기 위한 최적의 조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기차는 인프라 구축 등 효율성 측면에서 인구 500만명 이상의 대도시에서 상용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는 크게 배터리와 모터, 인버터, 배터리 조절 시스템(BMS)으로 구성된다. 배터리는 전기를 저장하는 부품이고, 모터는 기존 내연기관을 대신해 구동력을 발생시킨다. 인버터와 컨버터는 직류와 교류를 변환시키는 역할을 하며 BMS는 배터리의 충전, 방전을 조절하고 보호한다.
이 중 전기차 성능을 결정짓는 요인은 배터리인데 LG화학, 삼성SDI, SK에너지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LG화학은 GM의 공식업체로 선정됐고, 포드에도 납품하기로 돼 있다. 삼성SDI와 독일 보쉬가 합작한 SB리모티브는 BMW, 크라이슬러와 공급계약을 맺었다. SK에너지도 미쓰비스 후소에 납품 계약을 맺었다. 미국 빅3 등 세계 유수 업체의 자동차에 모두 한국산 배터리가 들어가는 셈이다.
현대ㆍ기아차는 지난 9월 최초의 양산형 고속 전기차 '블루온'을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블루온은 서울_천안 거리인 140㎞(최고속도는 시속 130㎞)를 한 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다. 2012년 본격 판매될 예정인데 앞서 개발된 일본의 닛산 리프, 미쓰비시 아이미브 등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문제는 정부의 인프라 구축과 관련 산업 간 조정 능력이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이미 전기차 구입 시 보조금 지급, 인프라 구축 등을 시행하고 있는 단계지만, 우리는 이제 막 계획 수립단계다. 미국은 가정용 전원을 사용할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HEV) 구매를 장려하기 위해 20억 달러 규모의 세액공제 지원금을 마련해 놓았다. 또 대도시를 중심으로 충전소 설치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일본 정부도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가 전체 자동차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전기차로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도한다는 야심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친환경 그린카 개발에 2020년까지 1,000억 위안(약 17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현재 상하이, 항저우 등 5개 도시에서 전기차 구매자에게는 6만 위안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지원책은 알맹이가 부족하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만 전기차와 일반차량 가격 차이의 50%를 보조해 줄 방침이다. 한국전력 주도의 충전시설 프로젝트는 아직 구상 단계에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기차를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은 물론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간 이해조정을 잘 해야 한다"며 "각국의 계획을 볼 때 2020년께 전기차에 대한 우리의 성패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 인터뷰/ 이호민 현대·기아차 전기차 개발팀장
지난 18일 경기도 화성의 현대ㆍ기아차 남양연구소를 찾았다. 공항 검색대 수준 이상의 보안 절차를 거친 뒤 전기차 개발 연구동에 도착했다. 휴대 전화의 카메라와 녹음 기능도 차단됐다.
잔뜩 기대를 하고 연구동 앞에 가 보니 주유소에 연구원들이 차에 기름을 넣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주유소가 아닌 전기 충전소다. 시험주행을 위해 이 회사가 개발한 전기차 '블루온'에 충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충전기 사용은 흡사 셀프 주유소를 연상시킨다. 차에 충전기를 갖다 대면 계기판에 전기를 얼마만큼 넣을지 숫자가 뜬다. 사용자가 충전양을 선택하면 결제할 금액이 표시된다. 카드를 계기판에 대고 비밀번호를 누르면 충전이 시작된다. 충전이 완료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5분. 이렇게 1회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서울~천안 거리 정도인 140㎞. 이호민(50) 현대ㆍ기아차 전기차개발 팀장은 "블루온이 미쓰비시의 아이미브를 뛰어 넘었지만 워낙 글로벌 업체간 경쟁이 심해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위해 80여명의 전문 연구원이 매일 밤을 새고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지난 9월 탄생한 블루온의 산파역할을 했다. 이 팀장은 "전기차의 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하이브리드차량은 기술적으로 이미 선구자인 도요타를 따라잡았다"며 "배터리 가격 인하, 인프라 구축만 제대로 된다면 우리도 전기차로 세계를 호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옆에 있는 김충 연구원은 "연구원들 중에는 주말부부가 월말 부부가 된 이들도 많다"면서도 "블루온이 탄생하던 날 눈물을 보인 이들이 있을 정도로 연구원들은 전기차 개발을 선도한다는 긍지가 높다"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