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에 올라온 5편을 거듭 정독하고 의견을 나눈 다음, 그 중 3편을 대상으로 다시 문학성과 미학적 성취에 대해 토론했다. 독창적 상상력, 서사적 육체성, 이야기의 그럴듯함과 설득력, 서사 가치와 미학적 성취 등 몇몇 기준을 바탕으로 숙의했다.
김미월은 <여덟 번째 방> 에서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불릴 만한 남녀 주인공의 처지와 행태를 실감 있게 형상화했다.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시절부터 색다른 직업을 가진 동세대 젊은이들의 사회경제적 생태와 문화적 코드를 복합적으로 다루면서 나름의 미학적 성취를 일구어왔던 작가의 첫 장편인 이 소설은, 어쩌다가 꿈을 잃어버린 혹은 꿈을 갖지 못한 세대의 우수와 그럼에도 상처받지 않을 최소한의 권리를 탐문하는 자존심을 환기하는 잔잔한 어조 등이 인상적이다. 현실의 구체적 세목을 제시하는 방식도 어지간하다. 다만 단편과는 달리 장편을 구축하는 서사적 척추가 조금 더 튼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주었다. 서울> 여덟>
천명관의 <고령화가족> 은 아주 잘 읽힌다. 활달한 스토리텔링으로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역동적으로 엮어낸다. 그러면서 ‘막장 가족’의 갱생 가능성을 탐문한다. 영화와 소설 등 허구 세계와 실제 현실을 가로지르면서 읽을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한다. 비루한 삶의 통과제의를 통해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지렛대를 모색하려 한 작가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문제적 상황을 구축하는 과정의 탄력성에 비해 그 해결 과정의 서사적 설득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다시 말해 서사적 추론의 면에서 전반부의 긴장이 후반부까지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령화가족>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 는 독특한 연애소설이다. 독특한 상상력과 스타일을 보여왔던 작가답게 색다른 분위기와 어조로 새로운 서사 리듬을 창안해 보인다. 담백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대화, 무의미한 듯 보이면서도 새로운 의미의 기미를 들추어내는 담론의 미시 전략이 돋보인다. 환상과 현실, 나와 남, 개인과 사회, 미학과 현실, 나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희미하게 드리워진 겹의 그림자를 응시하는 작가의 각별한 시선이 돋보인다. 거칠고 어려운 세상에서도 선근(善根)을 잃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고 환대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인물들의 초상도 웅숭깊다. 그러나 대사들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예상 가능한 반복 내지 지연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장편적 구성과 내용을 감당하고 있는가의 문제도 토론의 대상이었다. 백의>
<백의 그림자> 와 <고령화가족> 을 놓고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는 실험적이고 새로운 가능성의 미학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책 표지에 장편이라고 표기했다고 해서 꼭 장편의 척도를 들이댈 이유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수상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아울러 이번에 기회를 양보한 다른 작가들에게도 머잖아 은혜로운 시간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전하고 싶다. 고령화가족> 백의>
심사위원 김윤식 성석제 우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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