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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따뜻한 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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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따뜻한 비닐

입력
2010.11.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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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편의점의 불빛이 따뜻하게 빛날 때새벽이 밀려왔다 이 거리는 얼굴을 바꾸고아주 천천히 사라질 것이지만

나는 역시 나로부터 멀리 왔다는 생각두 다리를 쭉 뻗고 자고 있겠지만먼저 깨어난 사물들은 위험천만하게나를 위협할 것이다 나는 모르는 척몽롱하게 걸어 다닐 것이다

나는 나로부터 비롯되어 배가 고프고편의점에 가서 우유를 사고 깡통을 사고따뜻한 비닐에 먹을 것들을 담아나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서하나씩 까먹기 시작한다

지는 꽃에 대해서는 默默不答하고단것부터 먹기 시작하겠지만나는 종종 더 예뻐졌다는 생각아주 몰라보게 예뻐졌다는 생각이 거리는 아주 천천히 얼굴을 바꾸고

● 내가 쓰는데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새벽까지 소설을 쓰죠. 그러다가 시계를 보면 다음날이 걱정됩니다. 그래서 한창 쓰던 걸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죠. 시간은 새벽 세 시 정도. 그 시간쯤에 거리에는 다들 술 취한 사람들뿐이죠.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고. 어두운 거리에는 영업하는 커피숍의 불빛이 환한데,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죠. 새벽에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서 조금 더 가면, 밤새 손님을 기다리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네거리. 저마다 두 개씩 PDA 단말기를 들고 있지요. 그들은 오뎅 국물을 마시면서도 단말기를 들여다보지요. 그 불빛이 어두운 얼굴을 밝히는 걸 봅니다. 그것은 새벽 세 시, 생계의 불빛. 거룩한 불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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