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바둑이 사상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치르는 첫 경기인 혼성페어전이 20일부터 중국 광저우 체스회관에서 시작된다. 한국은 최철한(25)-김윤영(21)과 박정환(17)-이슬아(19) 두 팀이 출전해 바둑 종목 첫 금메달을 노린다. 이어서 23~26일에는 남녀단체전이 벌어진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바둑선수단이 내건 목표는 금메달 두 개, 은메달 하나지만 최근 세계 바둑계 흐름을 살펴보면 목표 달성이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각 종목 출전팀의 전력을 분석하고 한국팀의 메달 획득 가능성을 전망해 본다.
◇혼성 페어전
최철한-김윤영, 박정환 -이슬아
한국팀으로선 가장 불안한 종목이다. 평소 페어경기를 별로 안 해봐서 경기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상대는 물론 중국이지만 대만이 의외로 강세를 보이고 있고 일본도 전체적인 전력은 떨어지지만 페어대회 경험이 많아서 만만치 않다. 또 전력이 베일에 가려진 북한도 뜻밖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연인 사이로 호흡이 잘 맞는 류싱-탕이를 일찌감치 대표선수로 내세웠고 최근 항저우에서 열린 페어바둑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씨에허-송롱후이를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탕이는 2008년 세계마인드스포츠대회서 우승을 차지했고 궁륭산병성배서 4강에 올랐다. 송롱후이는 정관장배서 6연승을 올린 적이 있다. 혼성페어전은 특히 남녀선수간의 호흡이 중요한데 중국선수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철저히 훈련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혼성페어전에서는 특히 대만이 다크호스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대만은 그동안 한국과 중국이 강세인 남녀단체전보다 혼성페어전에 주력해 왔다. 이번에 출전하는 장쉬-씨에이민, 저우쥔신-헤이쟈쟈 조는 대만이 짜 낼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라 할 만하다. 장쉬와 씨에이민은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씨에이민은 여류기성 여류본인방 여류명인을 석권한 일본 여자바둑계 최고봉이고 장쉬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본 바둑계 최강자다. 최근 궁륭산병성배서 준우승한 헤이쟈쟈와 대만 본토 최고수 저우쥔신의 조합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일본에서는 다카오 신지-무카이 치아키, 유키 사토시-스즈키 야유미 조가 나서지만 남녀 모두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이나 중국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된다. 하지만 일본선수들은 페어전 경험이 많기 때문에 나름대로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팀은 그동안 혼성페어전에 대비해 열심히 훈련을 했다. 대표선수 전원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조합을 모두 시험해 본 결과 가장 어울리는 짝으로 최철한-김윤영과 박정환-이슬아가 최종 낙점됐다. 혼성페어전은 예선 이틀 동안 매일 세 판씩 두어야 하고 마지막날에는 준결승과 결승전이 잇달아 벌어진다. 또 다음날부터 곧바로 남녀단체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최철한과 박정환 모두 젊은 나이인데다 비교적 속기에 강해서 적격이다. 김윤영과 이슬아 역시 체력이 좋고 그동안 상비군 훈련을 거치면서 기량이 급상승했다는 게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일치된 의견이다. 김윤영은 특히 여류기성전에서 우승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고 ‘바둑 얼짱’ 이슬아도 큰 무대에 강한 스타일이어서 은근히 기대가 된다. 양재호 감독은 “안정감은 최철한-김윤영 조가 낫고 파괴력은 박정환-이슬아 조가 앞선다”며 “가장 큰 변수는 대진운”이라고 말했다.
혼성페어전은 10개국에서 17개팀이 출전, 남녀단체전에 비해 훨씬 참가팀수가 많고 남녀가 한 수씩 번갈아 두는 방식이어서 중간에 착수순서를 틀린다거나 상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해서 엉뚱한 수를 두는 등 뜻밖의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국 우승 가능성 35%.
◇ 남자단체전
이세돌 이창호 최철한 박정환 강동윤 조한승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역시 남자단체전이다. 남자단체전 우승이 곧 세계 최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자단체전에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7개국이 출전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본이나 대만이 우승권에 들기는 어렵고 결국 한국과 중국이 마지막에 금메달을 다투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다른 종목과 달리 은메달은 아무 소용이 없고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야 팬들의 기대 수준을 맞출 수 있다.
한국은 이세돌 이창호 최철한 박정환 강동윤 조한승, 중국은 콩지에 구리 씨에허 저우루이양 류싱 창하오 등 양국 모두 최상위랭커들로 선수단을 구성했다. 따라서 선수 명단만 보고는 어느 쪽이 우승을 차지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성적을 감안하면 중국쪽으로 약간 저울추가 기우는 게 사실이다. 한 프로기사는 “아주 미세한 계가바둑이지만 중국이 반집 정도 우세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세계대회 5연속 우승에 빛나는 콩지에가 건재한데다 한동안 부진했던 구리가 최근 삼성화재배 결승에 진출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여기에 ‘한국기사 킬러’ 씨에허와 신예강호 저우루이양이 든든히 뒤를 받치고 있다. 비교적 만만한 건 창하오 한 명 뿐이다. 류싱은 아마도 혼성페어전에 주력하고 남자단체전 특히 한중전에는 출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이세돌 혼자 평소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을 뿐 이창호가 아주 부진하고 나머지 선수들도 최근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 남자단체전 결승전에서 이세돌이 중국의 딩웨이에게 졌지만 김지석 한상훈 최철한 원성진이 각각 파오원야오 씨에허 콩지에 창하오를 이겨 결국 4대1로 우승을 차지했던 것을 생각하면 박정환 강동윤 등 패기만만한 신예들의 폭발력이 발휘될 경우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특히 남자단체전에서는 출전선수 오더가 어떻게 짜여지느냐가 승패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한국과 중국 선수간의 상대전적을 비교해 보면 상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은 콩지에와 창하오에게 각각 7승4패, 10승6패로 앞서 있지만 구리에게 5승6패, 씨에허에는 1승4패로 크게 뒤졌다. 반면 이창호는 모든 중국선수들에게 상대전적에서 앞서지만 유독 콩지에에게는 4승7패로 뒤진다. 또 최철한이 류싱이나 저우루이양에게 강하지만 씨에허와 콩지에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고수들의 대결에서 과거의 전적이 그리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를 전혀 무시할 수 없다. 앙재호 감독도 “한중 대결은 결국 오더 싸움이 될 것”이라며 “대표선수 여섯 명 가운데 누구를 뺄 지는 경기 직전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우승 가능성 50%.
◇ 여자 단체전
조혜연 이민진 김윤영 이슬아
여자단체전은 한국팀이 가장 공을 들인 종목이다. 사실 남자대표팀은 각자 대국 스케줄이 너무 바빠 선수 전원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았지만 여자선수들은 객관적인 전력이 중국에 뒤진다는 인식 아래 작년말부터 일찌감치 상비군을 구성해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왔다. 그래서 금메달 획득 여부에 관계없이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여자바둑이 확실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지난해 12월에 결성된 상비군까지 포함하면 여자대표팀의 훈련은 거의 1년 동안 계속됐다. 바둑 사상 단일 대회를 앞두고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훈련을 실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선수들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체 리그전과 정상급 남자기사들과의 연습대국 및 복기, 사활문제풀이 등 연구생 시절을 방불케 하는 맹훈련을 계속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대표선수들의 기량이 엄청나게 향상됐다는 평가다. 윤성현 여자팀 코치는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므로 이젠 중국과 한 번 겨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코치는 한국선수단의 강점으로 조혜연의 성실성과 안정된 반면 운영 능력, 이민진의 두둑한 배짱과 단기전에 강한 집중력 등을 꼽았다. 김윤영과 이슬아도 대표선수 훈련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기량도 크게 향상됐다.
중국 선수들과의 상대전적을 비교해 봐도 별로 뒤지지 않는다. 조혜연이 그동안 루이나이웨이와 가진 국내기전 결승전에서 여러 차례 져서 16승32패로 뒤져 있을 뿐 나머지 기사들끼리는 팽팽한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여자단체전은 3명이 출전하기 때문에 2승만 거두면 이길 수 있으므로 5전3승제인 남자단체전에 비해 훨씬 더 이변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 이는 곧 일본과 대만에도 충분히 기회가 있다는 말도 된다. 일본의 스즈끼 아유미는 얼마전 LG배서 중국의 신예강호 구링이를 꺾은 적이 있고 무카이 치아키, 요시다 미카, 오사와 나루미 모두 국제기전 경험이 많고 기초가 단단한 바둑이어서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대만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씨에이민은 일본 여자대회 3관왕이고 헤이쟈쟈는 최근 한참 상승세여서 뜻밖의 대형사고를 저지를 지도 모른다. 한국 우승가능성 40%.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