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지음
민음사 발행ㆍ147쪽ㆍ8,000원
1999년 등단해 기존 서정시와 뚜렷이 다른 감수성과 화법으로 개성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김행숙(40ㆍ사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김씨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내밀하게 말해보고 싶었다”는 말로 이번 시집의 지향을 설명했다. “끝내 도달할 수 없는 타인의 의미에 집요하게 다가가보고자 했다”는 그의 의지는 육체가 가장 밀착하는 포옹의 순간에도 흔들리고 무화되어 가는 관계의 본질을 인상적으로 포착한다.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나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포옹’에서)
관계의 정수에 바싹 다가서려는 시인에게 사랑만큼 적절한 장도 드물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손을 맞잡고 껴안을 때의 관능은 시 ‘공진화 하는 연인들’에서 파천황적인 인류 진화의 감각에 비견된다. ‘네 개의 발이 손과 발로 처음으로 구별되었을 때/ 손의 기분은 어땠을까/ … / 두 개의 손이 오른손과 왼손으로 처음 분열되었을 때/ 모른 척하기로 했던 것을/ 정말 모르게 되었을 때/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사랑은 자꾸자꾸 답을 내놓지, 너를 사랑해’
연인 앞에서 느끼는 수줍음을 시인은 독창적 감각과 관능적 시어로 형상화한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머리의 위치 또한.// 목을 구부려 인사를 합니다. 목을 한껏 젖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 // 당신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면 목은 어느 방향을 피하여 또 한 번 멈춰야 할까요.’(‘목의 위치’에서) 따가운 사랑의 눈빛을 받는 일은 나의 살갗에서 ‘타인의 살갗이 일어나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타인의 의미’에서)
시인의 시선이 세계를 향할 때, 관계에 대한 그의 예민한 감각은 윤리적 관심으로 화한다. 시 ‘화분의 둘레’의 화자는 작은 화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자신이 화초를 뽑아 던지거나 줄기를 잘라내 이 소중한 세계를 망칠 수 있음을 거듭 되새긴다. ‘이후에 나는 가장 가난한 삶을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라고 생각했습니다.// … // 나는 가장 넓은 화분의 둘레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걷다가 걷다가 지구에는 골목길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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