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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작 펄만에서 박태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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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작 펄만에서 박태환까지

입력
2010.11.1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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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남자육상 100m 한국 신기록이 31년 만에 경신되었다. 아직 9초대의 세계기록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 긴 세월,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땀 흘렸을까. 문득 기록 경신을 위해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 앞에 60대 노인이 나타나 가볍게 9초대로 달려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어 버리는 상상을 해본다.

얼마 전 내한한 이작 펄만의 연주를 본 연주자와 학생들의 심정이 바로 그랬다. 65세의 펄만이 19년 만에 내한했으니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공연장을 찾았지만 내심 큰 기대는 안 했다. 펄만의 연주 스타일은 진지함보다는 재기발랄함이 특징인데,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줄어든 테크닉으로 과연 펄만 다운 연주를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다.

음악회 전반에는 몸이 풀리지 않은 듯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후반 들어 소리에 빛이 나더니 20대의 민첩함과 고난도 테크닉으로 장난치듯 즐겁고 멋지게 연주를 마쳤다. 펄만은 자동 휠체어를 마치 스케이트보드를 탄 듯 휙 돌려 합창석 관중에게 인사하고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경쾌하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지난 한 달은 세계 유명음악인들의 잇단 내한 공연으로 이곳이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풍성했지만 모두가 팬들을 만족시킨 것은 아니었다. 한 예로 피아니스트 라두 루프의 대타로 온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의 연주가 그러했다. 4년 전 내한 공연에서 품위 있는 해석과 매력적인 소리로 다음 기회를 고대하게 했던 레핀은 이번에는 제 기량을 발휘 못해 실망감을 주었다.

레핀의 연주를 보며 오귀스탱 뒤메이를 떠올렸다. 뒤메이는 내한 공연을 무려 3번이나 직전에 취소해서 양치기 소년 별명까지 얻으며 팬들을 애태웠으나 드디어 2006년, 4번 째 약속을 지키며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 팬들의 뜨거운 반응이 통했는지 그 다음 연주는 2년 뒤 손쉽게 성사되었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무성의한 연주에 실망도 컸다. 물론 연주자 입장에서는 수십 해를 공연하는 중에 조금 안 좋은 시즌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만을 기억하고 탓하는 청중이 야속할 수 있다.

한 음악전문 기자는 음악인을 백조와 같다고 했다. 한껏 우아한 모습으로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수면 아래서는 쉼 없이 물장구를 쳐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무대를 위한 고단함은 스포츠인의 노력과도 종종 비유된다. 그들처럼 온 국민의 기대를 한 순간에 짊어져야 하는 부담은 없을지언정 음악인들은 젊은 시절뿐 아니라 평생 나태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시켜야 한다.

고령에도 초심을 잃지 않은 마리스 얀손스같은 음악인을 만나는 것이 더욱 감동인 이유이다. 유명 교향악단의 경우, 연주의 질에 상관없이 무조건 열광적인 한국 팬에 익숙해서인지 여행 오듯 가벼운 마음으로 내한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14년 전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고비를 넘긴 얀손스가 이끄는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는 달랐다. 비올라와 첼로 끝자리에 앉아 있는 오랜 관록의 할아버지 단원들까지도 한 번도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고 하모니를 이루어내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였고 그 모아진 소리와 음악은 청중들에게 평생 간직할 울림을 남겼다.

는 하이페츠의 명언을 가슴에 새긴 노장 음악인들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박태환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서 한 해를 마무리할 힘을 얻는 가을 끝자락이다.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 국민대 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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