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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이 다시 온다/ '예술극장 시리즈' 7점 첫 아시아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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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이 다시 온다/ '예술극장 시리즈' 7점 첫 아시아 나들이

입력
2010.11.1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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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에는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샤갈의 걸작들이 모두 모인다. 2004년 열린 같은 제목의 전시가 1950년대 이후 즉 샤갈의 말년의 작품들을 주로 소개한 데 비해 이번 전시는 샤갈 예술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시기로 꼽히는 러시아 시기(1910~1922)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 하이라이트는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1920)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크기와 구도 면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자주 비교되는 가로 787㎝ 세로 284㎝ 크기의 초대형 작품 '유대인 극장 소개'를 비롯해, '음악' '무용' '연극' '문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2m 높이의 패널화 4점, '결혼 피로연 테이블' '무대 위의 사랑'까지 모두 7점으로 구성돼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국립트레티아코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들은 샤갈의 예술 철학이 응축된 기념비적 작품들로 꼽힌다.

71년 만에 복원된 유대인극장 장식화

러시아에서 천대받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가난과 핍박에 시달리던 샤갈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예술인민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고향 마을 비테프스크에 미술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교수들 중 추상미술만 가르칠 것을 주장한 절대주의 화가 말레비치와 예술관의 차이로 갈등을 빚었고, 결국 그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 학교를 그만두고 1920년 모스크바로 떠난다.

모스크바에 새롭게 지어지는 유대인 예술극장의 내부 장식화를 의뢰받은 샤갈은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라도 하듯, 또 자신의 흔들림없는 예술관을 선언이라도 하듯 밤낮으로 장식화 제작에 매달려 극장 전체를 덮는 작품들을 창조해냈다. 그는 소용돌이치는 듯한 거대한 화폭 속에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인물, 물구나무를 선 광대, 악사, 동물, 러시아의 자연환경 등을 그려넣었다. 이는 추상미술에 대한 거부였고, 예술은 이해하기 쉽고 대중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 그리고 유대 문화의 가치 등의 메시지를 진솔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이 작품에 얽힌 사연 또한 드라마틱하다. 스탈린 집권 후 유대인 예술극장이 폐쇄되면서 샤갈의 장식화들 역시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이 그림들은 반 세기 동안 국립트레티아코프미술관의 창고에 잠들어있었고, 샤갈이 망명을 떠난 지 51년 만인 1973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작품들이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던 샤갈은 크게 감격해 작품들에 사인을 했다. 미술평론가 재키 울슐라거가 쓴 평전 에 따르면 샤갈의 지지자였던 한 화가가 극장이 폐쇄될 때 몰래 장식화를 등에 지고 미술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샤갈 사후 스위스 자나다 재단의 지원으로 5년에 걸쳐 복원돼 1991년에야 처음 공개됐다.

2004년에는 4점의 패널화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아시아 최초로 7점의 온전한 시리즈가 우리 앞에 온다. 이 시리즈는 이번 한국 전시 개최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 대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스페인 마드리드의 티센보르네미자미술관이 금융위기 여파로 샤갈 회고전을 2년 후로 연기하면서 극적으로 한국행이 결정됐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전시작 중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는 '산책'(1917~1918)과 '도시 위에서'(1914~1918)를 들 수 있다. 샤갈이 비테프스크의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모습을 몽환적으로 담은 이 작품들은 1915년 벨라와 결혼하고 이듬해 딸 이다가 태어나며 느꼈던 샤갈의 행복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두 작품의 보험 평가액은 각 500억원, 전시작 중 단일 작품으로는 가장 비싸다. '도시 위에서'는 6년 전에도 서울을 찾아왔지만, 대여 일정 때문에 전시 도중 이탈리아로 반출돼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었다.

보따리를 메고 회색빛 도시 위를 날아가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방랑하는 유대인의 아픔을 표현한 '비테프스크 위에서'(1915~1920)는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모티프가 된 그림이다. 콧대높기로 소문난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최초로 한국에 대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고향 마을의 풍경과 소, 샤갈 자신의 모습을 화려한 색채로 그려넣은 '농부의 삶'(1925)은 샤갈의 러시아와 파리 시기를 이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미국 버팔로 올브라이트녹스아트갤러리가 이 작품을 외부로 내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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