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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택스컷, 너무 쉬운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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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택스컷, 너무 쉬운 결별

입력
2010.11.1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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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정치물로 꼽혔던 의 한 장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ㆍ민주 양당 후보가 불꽃 튀는 TV토론을 벌인다.

주제는 의료개혁. 민주당 후보는 "제약사 폭리가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면서 비싼 약값을 규제할 것을 주장한다. 반면 공화당 후보는 "가격을 통제하면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을 중단해 국민건강이 더 위태로워진다"고 반박한다. 전형적인 민주당원, 공화당원다운 시각들. 논쟁은 이어 아프리카 질병과 빈곤 문제로 넘어간다.

민주후보: 제약사들이 약을 비싸게 공급하니까 아프리카의 에이즈환자 등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공화후보: 말은 바로 하자. 깨끗한 상수도와 제대로 된 병원이 없어서지 제약사 때문에 죽는 것은 아니지 않나.

민주후보: 그렇다면 상수도와 병원을 짓게 원조도 해주고 부채탕감도 해줘야 한다.

공화후보: 글쎄, 별 도움은 안될텐데.

사회자: 그럼 그들에게 뭐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공화후보: (잠시 생각하더니 확신에 찬 큰 소리로 외친다) 택스 컷(Tax-cut:감세)!

순간 장내는 썰렁해진다. 아프리카 의료 문제를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감세라니. 민주당 후보도, 사회자도, 청중들도 모두 황당한 표정들이다.(이어지는 장면에서 공화당 후보는 아프리카에도 원조나 부채탕감보다 감세가 왜 더 중요한지 아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드라마 자체가 약간은 민주당 편향적이었던 의 풍자처럼, '공화당원들은 무슨 토론을 해도 결론과 처방은 언제나 택스컷'이다. 그들에게 감세는 단순한 조세정책이 아니라, 절대가치가 다름없다. '낙태반대'만큼이나 말이다. 이달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뒤 오바마 행정부를 향해 던진 첫 마디도 "(금년말로 종료되는) 고소득층 감세조치를 연장하겠다"였다.

우리나라를 보자. 한나라당이 부유층 감세계획을 사실상 철회하는 분위기다. 나 개인적으론 감세가 처음부터 못마땅했고, 어느 정도는 과세를 더 강화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책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리고 한나라당과 미국 공화당의 차이를 인정한다 해도, 명색이 보수정당이 어떻게 이리도 쉽게 감세를 버릴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감세는 그냥 공약이 아니다. 시장 자율, 작은 정부, 가격규제배제 등과 동일선상에 놓인 보수경제 고유의 가치다. 보수정당이 감세를 버린다는 것은 중대한 이념적 수정이 있다는 뜻. 그렇다면 감세와의 결별에 앞서 정당노선에 대한 치열한 논쟁, 그리고 당원 또는 유권자를 향한 대외적 선언이 선행됐어야 옳다. 적어도 보수주의자들이라면 감세란 그냥 '강부자'이미지가 부담스러워서, 장래 선거에 악재가 될 것 같아서 폐기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카드는 아니란 얘기다.

하기야 보수의 가치는 이미 버렸을 지도 모른다. 보금자리주택, SSM규제, MB물가관리까지 '크디 큰 정부'성향의 정책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 모든 것들이 친서민과 실용의 타이틀로 포장되곤 하지만, 결코 정당의 존재이유인 이념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지금 이 시점에서 드는 궁금증.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뭘까. 정말로 보수정당일까.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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