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삼성전자 고문)이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에 임명된 것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불리던 그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상고와 고려대를 나와 1971년 제일모직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 고문은 82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팀장을 맡으며 이건희 삼성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됐다. 이후 그는 회사로는 거의 출근하지 않는 이 회장을 대신, 삼성의 살림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말이 이 회장의 말과 동일시되면서 영향력은 급속도로 확대됐고, 사실상의 삼성 2인자로 부상한 것. '이 고문이 없는 삼성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이 때문에 이 고문이 8월 사면ㆍ복권되자, 삼성 안팎에선 그가 연말 정기인사에서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그가 삼성의 핵심인 삼성전자도 아니고, 실적 전망이 불투명한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으로 물러난 이유는 간명했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 과거 전략기획실에 대한 문책의 성격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전략기획실이 잘못 운영된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의미다.
전략기획실은 각 계열사를 지원, 그룹의 전체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회장을 보좌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삼성 특검으로 인해 유죄 판결까지 받은 것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전략기획실에 있다는 것.
특히 이 회장의 위기감은 이 고문의 퇴진을 결정하게 된 주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사장은 이날 이 회장이 "곧 닥쳐올 변화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룹 전체의 힘을 모으고 사람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3월 경영에 복귀할 때도 "지금이 진짜 위기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위기론을 내세운 바 있다.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부정적인 그림자'는 적절치 않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 부사장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데 있어서 길을 터 줄 필요성도 있다. '이학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그가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주역 중 한 명이라는 평가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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