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오너 경영 체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7일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사장 승진을 공언, 향후 이 부사장의 역할은 그 만큼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올해 42세인 이 부사장의 사장 승진으로 대규모 발탁 인사와 조직 개편 등도 뒤따를 것으로 보여 삼성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조짐이다.
회장 중심 오너 체제 강화
재계에선 이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더라도 곧 바로 이재용 체제의 개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이 경영의 축인 만큼 이 회장을 중심으로 놓은 상태에서 이재용 부사장의 위상과 역할이 강화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이번 인사는 경영 승계 가속화란 구도보단 위기 극복 차원에 더 가깝다는 것이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은 3월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이 회장이 2년 가량의 공백기를 거친 이후, 처음 단행하는 정기 인사인 만큼 예상을 뛰어 넘는 물갈이와 조직 개편 등이 뒤 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회장은 최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참관을 위해 떠나는 출국 길에서 "될 수 있으면 연말 인사에 대한 폭을 넓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부사장이 40대 초반의 젊은 오너 일가인 점을 감안할 때, 삼성 사장단의 연령대가 대폭 낮아지거나 30~40대 임원의 발탁 같은 쇄신 인사 가능성도 점쳐진다.
아울러 친정체제 강화를 위해 오너 일가와 가까운 최 측근 인사들의 중용 시나리오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부사장이 맡게 될 직책과 과제
이 부사장이 승진을 할 경우 어떤 자리를 맡을 지 주목된다. 이 부사장이 사장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부회장이 될 수도 있지만 삼성의 인사 스타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사장으로 승진할 경우엔 ▦삼성전자 이외 계열사 사장 ▦삼성전자 사업부 사장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 등의 세가지 경우를 꼽아볼 수 있다. 그러나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제외한 채 다른 계열사를 맡는다는 것은 실익이 없어 보이고, 삼성전자 사업부를 책임지는 것은 경영 실적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위험이 따른다는 점에서 지금 자리에서 사장으로 직급만 올라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실제로 사업부를 맡아 경영 능력을 검증해 보일 수도 있고, 이 경우엔 무선사업부나 TV 부문 등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한편 이 부사장이 인터넷 사업을 주도하다 사실상 실패로 끝난 뒤 이렇다 할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은 그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반도체와 LCD 등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데다 올 상반기 시황이 좋았던 덕분이다. 물론 COO로서 이 부사장의 기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서며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경기 회복세가 둔화하고 있다. 이 부사장으로선 연말 인사에서 사장 승진을 달가워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선 경영 능력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뒤따를 수도 있다. 이 회장이 이날 귀국길에서 내년도 사업전망을 묻는 질문에 "어렵지만 올해와 같이 보다 더 열심히 해서 흑자를 많이 내야겠죠"라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내년에도 올해에 버금가는 실적을 거둬 이 부사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 물음표를 뗄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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